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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29. 2020

뻔뻔함

  


 Y가 거실에서 혼자 낄낄거리고 있길래 궁금해서 나가봤더니 가수들의 흑역사 모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 영상은 한때 잘 나갔던 가수들의 오글거리는 무대매너와 멘트, 고음에서의 음이탈, 염소 바이브레이션 그리고 <슈퍼스타 K>에 등장한 오디션 응모자들의 어설픈 모습들이 조각조각 편집되어 있었다.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자신의 과거가 영상으로 박제되어 돌아다닌다면 당사자의 기분은 어떨까.     


 나의 흑역사를 꼽아보라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대학 때 밴드부 보컬로 활동했을 때가 아닐까 싶다. 노래 좀 한다고 단단히 착각했을 때여서 무대 위에 서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긴장되기는커녕 갑자기 에너지가 샘솟는 것이 이쯤 되면 타고난 무대체질이라고도 생각했다. 유명한 가수들이 연말에 콘서트를 여는 캠퍼스 내 대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고, 학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몇 백 명 앞에서 노래 한 적도 있다.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네버에버, 못할 일들이다. 

 

 밴드 동아리 활동은 내 청춘을 더없이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경험이었지만 누군가 그때의 영상을 지우지 않고 파일로 보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허공에 로우킥, 미들킥, 니킥을 날린 뒤 그 허공 속으로 먼지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 그때의 나는 무대 위에서 오글거림과 관련된 모든 행동을 했을 것이고, 음정 박자를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어설프게 락커 흉내를 냈을 것이 분명하다.      


 흑역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아리 선배 결혼식에서 나름대로 다소곳하게 축가를 부르다 ‘삑사리’가 났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 달 후, 우울할 때마다 그 영상을 본다는 선배의 말을 술자리에서 들었을 때 나는 온갖 것을 녹화하고 기록하는 현대 문물을 다 불살라 버리고 싶었다. 선배가 자식을 낳으면 그의 아들딸들이 부모의 결혼식 영상을 보는 날이 오겠지. ‘아빠, 저 축가 부르는 여자 누구야? 노래를 왜 저렇게 해?’ 라고 물으며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겠지. 그런 상상을 하느라 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마음 놓고 웃지를 못했다. 당사자에게 흑역사란 떠올릴수록 울고 싶어진다는 의미에서 ‘흙, 역사’ 이기도 했다.      

 ‘흙흙’ 울고 싶어지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Y에게 말했다.      


- 내 흑역사가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창피해.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 내 앞에 나타나면 어떡하지. 

- 너도 무대 위에서 저랬어?     


- 몰라. 기억이 잘 안 나. 그런데 스무 살의 나는 저러고도 남았을 거야. 자기 객관화가 뭔지 모를 때였거든. 아직,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으니까. 그때로 돌아가면 악기를 할 거야. 드럼이나 기타를 배울 걸, 왜 노래를 한다고 설쳤을까.


그런데....     

응?     



 내 얘길 골똘히 듣던 Y가 애매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흑역사가 있다는 건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는 거 아닐까. 네 얘길 듣다보니, 오히려 흑역사를 조롱하는 영상을 보며 웃던 내가 한심해졌어. 적어도 그 영상 속의 사람들은 잘하든 못하든 용기내서 뭐라도 시도해본 사람들인 거잖아. 그 영상을 만든 사람이나 영상을 보면서 깔깔대던 사람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오.. 듣고 보니 그랬다. 그 무렵의 나는 제니스 조플린이나 한영애 같은 락커를 꿈꿨다. 예나 지금이나 락(Rock)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장르였는데, 그 두 여성 보컬은 어떤 남성 보컬보다 무대에서 파워풀했고 멋있었다. 그들의 공연 영상을 볼 때마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거 말고 거칠고 폭발적인 걸 해 보고 싶었다.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샤우팅을 하던 나의 흑역사는 딱 그 나이 때만 시도해볼 수 있는 용감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혼식 축가를 부르다 삑사리가 나서 웃음거리 좀 되면 어떤가 싶었다. 내 한 몸 희생해서 대대손손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나의 축가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관점을 바꾸니 흑역사는 더 이상 ‘흙, 역사’가 아닌 ‘훅, 역사’가 됐다. ‘훅’하고 다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두고두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Y 말대로 흑역사가 성실함의 흔적이라면 오히려 자랑스러워할만 하고 타인의 흑역사를 조롱하는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했다.      


 물론 마야의 <진달래꽃>을 부르며 헤드뱅잉을 하는 과거 영상이 어딘가 올라온다면 나는 쥐구멍이 아니라 개미지옥이라도 자처해서 들어가고 싶겠지만, 그래도 숨지 않고 뻔뻔해져 보려고 한다.     



  ‘저거 나 아닌데?’ 하고 발뺌 하는 연기력을 길러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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