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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29. 2020

말다툼

    

“그동안 항상 펜을 가지고 다녔다. 누워 있다가 쓰고, 걷다가 쓰고, 누구를 만나다가도 썼다. 휴대폰에, 손에, 광고지에도 썼다. 힘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한 일이 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었다. 나를 지탱해 준 것도, 숨 쉬게 해 준 것도 ‘글’이었다. 

<김지은입니다>          




 코 골며 자는 남편 옆에서 일기를 쓴다. 그는 두 손을 가슴에 다소곳이 모은 채 정자세로 바닥에 누워 잠 들었다. 반 년 전 이사 할 때, 중고로 사서 썼던 침대와 소파를 버렸다. 남들이 가지고 사는 거, 없이 한번 살아보자는 심산이었다.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했을 경우 한국으로 돌아갈 사태를 대비해, 최대한 짐을 줄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디든 잠깐 머물다 갈 곳이라고 생각하면 소유욕을 절제할 수 있었다. ‘없는 상태’를 디폴트값으로 받아들이면 조금만 가져도 금방 행복해졌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소박하게 살아보려고 해도 마음의 안녕과 평화를 방해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가까운 사람과의 말다툼이었다. 



 저녁에 뉴스를 보면서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언쟁이 있었다. 대부분의 정치적 논쟁이 그렇듯 대화의 본질은 사라지고 ‘내가 맞다’ ‘너는 틀리다’의 말꼬투리 잡기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결혼 후 가장 오랜 시간 다퉜던 때는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있던 무렵이었다. 남편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나는 여성이 남성을 극단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뼈아픈 현실을 이야기 했다. 100분 토론을 방불케 하는 2시간의 열띤 토론에 모든 체력과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니, 허공을 향해 혼자 떠든 듯, 공허함이 밀려왔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하고 있었다. 대립각을 세우는 와중에도 ‘약자는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보호받아야 하며, 범죄자는 냉혹하고 강력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는데, 그 접점은 살필 겨를 없이 상대방의 입장을 반박하는 데만 급급했다. 다 같이 잘 살면 좋겠다고 시작한 이야기는 왜 항상 더 어긋나 버리는 걸까.      


 4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남편은 ‘남성’이 가진 생물학적, 사회학적 권력 체계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듯하나, 그것을 여성혐오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낀다. 외국인 노동자로서, 약자의 심리를 조종하는 권력의 교묘한 수작을 알고 있으면서, 부당함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경험했으면서,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을 접할 때는 피해자의 호소가 일방적인 주장은 아닌지 의구심부터 품는다. 여성 피해자보다는 아무래도 고소당한 남성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여러 번의 말다툼 끝에 우리는 적당히 서로 번갈아가며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고 흐릿하게 젠더 갈등의 논쟁을 마무리 지었다. 의견의 첨예한 대립을 해소하는 데 ‘당신이 맞다’고 끝내버리는 것 외에 더 좋은 해결책이 있을까 모르겠다. 타인의 의견을 바꾸려다 보면 결국 내 마음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감정싸움 뒤에는 찝찝함이 항상 남는다. 낯선 사람과의 언쟁이었다면 적당히 흘려보냈을 텐데, 그 무심함을 가까운 사람에게는 적용하기가 힘들다. 서로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공감을 받고 싶은 것이다.  


 찝찝함과 분노가 묘하게 뒤엉켜 있는 상태에서 꾸역꾸역 108배를 했다. 몸을 숙이다 보면 마음 속 고집도 한풀 꺾이게 마련이었다.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금방 미움과 배신감을 느끼는 나의 얄팍함에 헛웃음이 났다. 마음이 부정적으로 물들어가는 것은 보지 못하면서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주장하는 게 앞뒤가 맞나 싶기도 했다. 누굴 비난하기 전에 방관자로 살아온 나를 먼저 돌아보기도 했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김지은 씨의 동료가 그랬듯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봤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분노하는 이유가 정말 사회 변화인지, 아니면 상대방의 말을 반박할 때 드는 쾌감인지 면밀하게 들여다봐야겠다......고 써 보지만, 역시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을 비우는 데 과도하게 신경 쓰는 것은 미니멀리스트의 태도라기보다, 그냥 심리적 결벽증의 일종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질문할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난다.       

 

일기를 쓰고 나니 그래도 후련하다. 코 고는 남편은 얄밉다. 코를 살짝 비틀어본다. 어찌 됐든 오늘도, 알아야 할 것을 알려고 했고, 쓰고 싶은 것을 쓰려고 했다. 내일도 같은 일을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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