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료 Oct 29. 2020

바랄 수 없는 것을 간절히 빌다가

     


 노트에 ‘야단스러움’이라는 단어를 보관했다. 요즘 일상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확한 말이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여름 똥파리처럼 부산스레 움직였다. 과장된 몸짓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꾸만 설명하고 싶어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설득하고 싶어졌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생각을 마땅한 자리에 옮겨다 놓고


‘갈애’ 라는 단어를 꺼내 거울 보듯 한참을 들여다봤다.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갈구하는 마음은 인간의 오래된 습성. 생각은 콩팥처럼 꼼짝없이 몸 안에 갇혀있어서 꺼내려면 죽음 말곤 방법이 없다. 마음의 허기가 최초의 인간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같은 것이라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의식주’ 세 글자, 부적처럼 품으란 말을 들었다. 옷을 입었는지, 식사를 했는지, 깊은 잠을 잤는지, 갓난아기 보살피듯 세심하게 확인하면 야단스레 ‘꼬르륵’ 소리 내던 마음은 오간데 없을 거라고. 콩팥의 존재를 잊고 살 듯 생각을 잊자. 잊을 수 없다면 속지를 말자.      


 백팔 번, 절을 했다. 남편이 무릎이 시리고 아프다 한다. 절뚝, 절뚝이면서도 무릎을 굽히고 둥글게 몸을 말아 엎드려 빈다. 심장과 심장을 포개듯 두 손을 모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간절히도 비는 사람. 어느 날은 보름달 윤곽처럼 눈부시다가 다른 날엔 부러진 우산살처럼 슬퍼 보인다. 매일 밤 내 무릎에 누워 귀를 좀 파 달라고 조르는 사람. 미지의 동굴 입구에 선 듯 가만히 귓구멍을 들여다본다. 야단스런 마음은 거기에 있을까. 한참을 들여다봐도 먼지와 귓밥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기 위한 부적을 돌돌돌 말아 깊고 컴컴한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전 12화 뻔뻔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