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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료 Oct 29. 2020

고양이의 마음

“물론 믹스는 막스의 고양이고, 막스는 믹스의 주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면 한 사람이 다른 이나 어떤 동물의 주인이라고 하는 게 얼마나 그릇된 생각인지 깨닫게 된다. 차라리 막스와 믹스, 아니 믹스와 막스는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_루이스 세풀베다>     







 주방 세제가 똑 떨어져서 마트에 다녀왔다. 동네 고양이들이 제 집 마당 의자에 엎드려 꾸벅꾸벅 조는 시간이었다. 큰 무화과나무가 있는 집에는 황색 점박이가 있는 통통한 고양이가 살고, 정원 한가득 장미를 키우는 이탈리아 할머니 집에는 수줍음 많고, 겁도 많은 분홍색 코 고양이가 산다. 봄마다 보라색 꽃이 눈부시게 만개하는 자카란다 나무 앞집엔 짙은 회색빛 러시안 블루가 사는데, 작은 방울을 목에 달고 있어서 짤랑짤랑 소리가 나면 멀리서부터 그 애가 다가오는 줄 안다. 처음에는 길고양이인 줄 알고 불쌍하게 여겼는데 알고 보니 산책냥이었다. 


 행여나 휙 도망 나갈까, 현관문 여닫는 것도 조심하며 애지중지 반려묘들을 키우던 남편은 호주에 와서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기는 고양이들을 신기해했다. 산책냥들은 우리를 쫄래쫄래 쫓아오다가도 자기들 안전구역을 벗어난다 싶으면 절대 따라오지 않았다. 영리하게 아는 길만 왔다 갔다 하는 거였다. 가끔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뛰쳐나가는 고양이도 있었다. 그들을 간절히 찾아 헤매는 집사들은 현상금까지 걸며 ‘고양이를 찾습니다’ 전단지를 붙여놓기도 했다. 집 앞 사거리 신호등 기둥에 <얼룩무늬 고양이, 루시를 잃어버렸다>는 종이를 본 적이 있다. 그 무렵, 새벽 세 시에 출근을 하던 셰어메이트 H가 루시를 봤다고 내게 말했다. 집사가 걱정하는 것과 달리, 그 어두운 새벽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고 했다. 루시는 집사와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있던 걸까. 


 호주 워킹 홀리데이 시절의 어느 여름날 일이다. 더워서 현관문을 열어두었는데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온 적 있었다. 제 집에 들어온 양 자연스럽게 2층까지 한 바퀴 휭 둘러보고는 ‘야옹’ 하고 나를 보며 울었다. 배고픈 길냥이인가 싶어 멋도 모르고 참치캔을 따서 조금 주었는데 그 후 일주일에 두어 번 우리 집엘 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뜨끈하게 데워진 우리 차 보닛 위에서 졸고 있기도 했다. 그 앨 위해서 우리는 고양이 간식을 매주 구비해두었는데 알고 보니 동네 고양이였다는 사실. 고양이의 뻔뻔함이랄지, 당당함이랄지, 아무튼 닮고 싶다. 


 산책냥들은 대부분 사교적이다. 지나가는 행인 모두에게 예쁨 받고 싶어 한다. 인간이 보이면 멀리서, 꼬리를 바짝 세우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달려와 가랑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르렁 댄다가 몸을 발랑 뒤집는다. 가느다란 수염이 난 양 볼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어주다가, 너무 예뻐서 참지 못하고 몸을 마구 쓰다듬으면 질색을 하고 달아나 버린다. 밀당의 귀재들이다.  


 어떤 고양이들은 밖에 잘 나오지 않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있길 더 좋아한다. 길을 가다가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따가워서 고개를 돌리면 십중팔구 고양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럴 때면 고양이의 마법 – 내 눈을 바라 봐- 에 걸린 것처럼 발걸음을 뗄 수가 없고, 졸린 눈의 고양이와 눈싸움이 시작된다. 무언가를 무심하게 오래 바라보는 일에 달인인 고양이들을 이길 방도가 없다. 나는 빨리 주방세제도 사야하고 밀린 설거지도 해야 하고 일기도 써야 하고, 일기를 팔기까지 해야 하지만 고양이는 별달리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고양이의 무無목적성을 닮고 싶다. 


 워홀 시절, 그 검은 고양이에게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연 까닭은 한국에서 고양이 두 마리 –반달이와 반야-를 키우다 왔기 때문이었다. 호주까지 데려올 수 없어서,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현 남편의 아버지에게 맡기고 왔었는데 그 중 한 마리인 반달이가 추석 연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갑자기 죽은 거였다. 검정색 브리티쉬 숏 헤어 종이었는데 굉장히 순했고, 눈망울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한 번 파양된 경험이 있는 아이였기에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반려묘를 들이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때, 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부사장 딸은 고양이 두 마리를 샀다. 남편 말로 부사장 딸은 고양이에 정말로 애정과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액세서리처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진위 여부야 어찌 됐든 부사장 딸은 뒤늦게 자신에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두 마리는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 가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마리, 반달이가 남편의 집으로 오게 된 거였다. 


 고양이 두 마리와 남편과 함께 아침을 맞던 이십대 시절이 문득 떠오를 때가 많다. 고양이 털 가득한 방바닥과 벽을 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고, 내 겨울 코트에 묻은 고양이털까지 돌돌이로 청소해주는 그의 자상함을 보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지금도 고양이를 보면 어쩔 줄은 몰라 하며 좋아하지만, 이미 우리에겐 고양이 두 마리를 책임지지 못한 전과가 있기 때문에, 나 하나 행복하자고 반려묘를 입양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남편에게 신신당부 하고 있다. 고양이가 제 발로 우리집으로 들어온다면 사양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세월은 이만치 흘러 반달이는 하늘나라로, 반야는 친정 엄마 집에서 5년 째 행복하게 살고 있다. 호주에 정착하게 되면 꼭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제 엄마와 반야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반야와 반달이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쩐지 그들은 우리의 부족함을 향해 서운해 하거나 야속해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랑 주고 보답을 기다리는 건 옹졸하고 치졸한 인간의 마음이지, 고양이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여러 면에서 더 나은 존재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아름다운 동화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를 읽으면서 더욱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고로 눈이 먼 고양이 막스와 생쥐 멕스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며, 이들이 인간이 만든 ‘톰과 제리’를 본다면 분명 가소롭다 여길 것 같았다. 물론, 고양이라고 다 도통한 현자는 아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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