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같은 검은색 펜은 없다

by 미료



립스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늘 아래 같은 컬러'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얼핏 보기에 같은 빨간색이라도 채도와 명도, 질감과 발림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립스틱은 잘 모르지만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하늘 아래 같은 검은색 펜은 없다'라고 주장해 보고 싶다. 필사를 하면서 필기감을 예민하게 느끼 보면 펜의 굵기와 그립감, 무게감, 잉크의 점성에 따른 번짐이나 끊김 등이 각각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많은 필기구들 중 나에게 맞는 걸 고르는 방법은 문구점에 가서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잉크가 부드럽게 나오면 무조건 '잘 써진다'라고 느끼지만 실제로 자신의 서체와는 맞지 않는 펜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글씨가 작은 편이고 흘림체보다는 정자체에 가까워서 0.5mm 이하의 펜을 주로 사용한다. 동글동글하게 쓰려기보가 각 지게 쓰려고 하는흔히 Gel Ink라고 부르는 중성펜보다는 유성펜 (일명 똥 펜)으로 쓸 때 글씨가 더 깔끔하게 쓰인다. 그러나 잉크가 선명하게 나오는 쪽을 선호해서 중성펜을 주로 사용한다. 중성펜의 경우 금방 마르지 않아 번질 위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요즘 나오는 펜들은 3-4초만 기다리면 대부분 금방 마른다. 중성펜 중에서도 uni ball eye처럼 워터프루프 잉크를 쓰면 번지는 걸 덜 걱정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수성펜, 중성펜, 유성펜을 적절히 섞어서 쓰면 같은 검은색 펜을 쓰더라도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패션 코디로 비유하자면, 각각 다른 원단을 사용해 미세하게 색이 다른 검은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 검은색 양말을 입은 것과 비슷하다.


펜 한 개에 여러 잉크심이 장착된 3색, 4색 볼펜처럼 펜대 자체가 두껍고, 0.7mm 이상의 굵은 펜은 쓰다 보면 손목이 쉽게 피로해진다. 간혹 흘림체로 간단히 메모하거나 밑줄을 그을 때는 제트스트림 3색 볼펜을 애용하기도 한다. 굵은 유성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제트스트림 101'도 추천한다.


독서노트 쓰던 초기에 좋아했던 펜은 파일롯 G-2 0.38mm이었다. 잉크가 너무 잘 나오다보니 얇다는 느낌이 없아서 파일롯 G-TEC-C 0.4mm 제품을 써 보았다. 굵기는 아주 살짝 더 굵은데 더 가늘게 씌여지는 느낌이었다. 펜촉의 굵기는 다르지만, 촉 끝의 모양에 따라 잉크가 나오는 정도가 달라서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독서노트 유튜브 채널에서는 한참 파일롯 Juice up 04 제품을 추천했다. 펜을 쥐는 부분이 고무로 되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고 펜 자체도 가벼웠으며 디자인도 세련됐다. 한국에서 사 온 펜이라 다 쓰고 나서 호주에서 구하진 못했는데 다행히 비슷한 제품 (SIGNO RT1)을 팔고 있어서 대용으로 쓰고 있다.


나에게 맞는 펜을 스스로 발견하는 일이라 어떤 펜이 좋다고 추천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참고용으로 보시라고 필통에 있는 나의 펜과 그간 필사 모임에서 공유한 펜 몇 개를 리스트업 해 본다. 해외에 살고 있어 부득이하게 일본 제품이 많은 점 양해 바란다. COVID 19가 얼른 완화돼서 국산 볼펜 리뷰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며.



<필사하기 좋은 펜>


1. 파일롯 주스 업 0.4

2. 유니볼 시그노 RT1 0.5

3. 파일롯 G.TEC.C MAICA 0.4

4. 유니볼 아이 (UNIBALL EYE)

5. 유니 제트스트림 0.38

6. 지브라 사라사 클립 0.5

7. 모나미 트리피스 0.5

8. 지브라 블렌



<아직 고가의 만년필이 부담스럽지만

만년필을 써 보고 싶다면>


1. 파일롯 카쿠노

2. 플레티넘 프레피

3. 라미 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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