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리씨 Dec 21. 2017

동지 팥죽 /인생의 맛

노처녀 다이어리 #47




동지는 24절기 가운데 스물두번째 절기로

팥죽을 쑤어 먹는 날입니다.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에

팥을 고아 새알을 넣고 죽을 쑤어 먹는 동지팥죽!


옛날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기에 앞서

대문이나 장독대에 뿌리면 귀신을 쫓고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여겼답니다.

이사하거나 새 집을 지었을 때에도

좋은 기운을 위해 팥죽을 쑤어 집 안팎에 뿌리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네요.  

또, 병이 나면 팥죽을 쑤어 길에 뿌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병마를 쫓는다는 생각에서 연유한 것이랍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무리 씨 엄마는

어린 무리 씨와 무리 씨의 오빠, 동생에게

동짓날마다 팥죽을 한솥 끓여 먹이려 하셨지요.

그러나 어릴 적 누구나 그랬듯 무리 씨도 팥을 싫어하는 소녀였습니다.

“이게 왜 맛있다는 거지?”

“엄마, 그런 미신 같은거 믿지 마. 이게 뭐가 맛있어? 난 그만 먹을래. 하나도 맛없어~”

라고 말하며 숟가락을 이내 내려놓기 일쑤였죠.

지금은 잘 먹는 팥죽이지만 어릴 적엔

많이 있어도 쳐다도 안보는 무리 씨였습니다.

팥죽을 먹을 때면 팥이 덜 붙은 새알심만 골라 먹곤 했습죠.

팥죽보단 새알이 더 맛난 시절이었습니다.

나이만큼 먹는다는 팥죽 속 새알.

그땐 나이를 빨리 먹고 어른이 되고 싶어서

엄마의 새알심을 뺏아 제 나이보다 몇개씩 더 많이 먹곤 했었죠.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날의 무리 씨는 엄청 멋진 모습의 미래를 꿈꾸는 철부지 소녀였습니다.

뭐. 지금도 나이만 먹었지 철부지 어른인건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른이 되니. 아니 더 정확하겐 서른이 넘고나서야

팥죽을 잘 먹게 된, 그 맛을 알게 된 무리 씨.


근데, 팥죽 맛은

인생의 쓴 맛을 알아야만 알게 되는 걸까요?


어릴 적 꿈꾸던 모습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조금씩 알게 될 때 쯤

팥죽이 달게 느껴진 무리 씨.

어릴 적 혼자 거실 마룻바닥에 앉아

팥죽을 맛나게 드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엄만 팥죽의 맛을 잘 아신겁니다.

인생의 쌉싸름한 단맛 말이죠.

“그 때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랑 크게 차이가 안나는구나.. 내가 벌써 그 나이가 되어가구나”

나이많은 큰 어른이라고만 생각한 그 엄마가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괜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 시절 엄마가 그리워집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절 엄마와 지금의 무리씨가 친구처럼 같이 마룻바닥에 앉아 팥죽을 함께 먹어보고 싶습니다.  


문득 팥죽이 먹고 싶어집니다.

요즘은 새알보다 죽을 먼저 먹는 무리 씨.

어릴 적보다 나이를 먹고 싶은 욕망이 덜해서 일까요. 엄마가 느낀 맛을 그녀가 이젠 알기 때문일까요.

어쨋든 팥죽이 점점 맛있게 느껴지는 무리 씨입니다.

믿든 안믿든 전해오는 풍습처럼

나쁜 것도 쫓고 건강해지고 좋아진다면

팥죽이 되고 싶군요.






인스타그램 miryung.j

매거진의 이전글 왠지 모를 /이상한 식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