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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리씨 May 28. 2019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쉬어질까요? /과연

feat노처녀다이어리#60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쉬워질까요?
흔히들 나이를 먹으면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서 사는 게 좀 편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경험’과 ‘연륜’을 쌓아가는 일은 어려움을 만난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죠.

20대 후반 때의 일입니다.
9번의 이사 끝에 드디어 자그마한 반지하 전세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전세방을 얻기위해 엄청난 발품을 팔아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었죠. 겨우 구한 그 방은 반지하라 습하기도 하고 빛이 적게 들긴 했지만 그래도 월세를 내지 않게 되어 기뻤습니다. 좀 걱정이 되었던 것은 저지대에 있다는 거였습니다. 혹시 침수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부동산에서는 걱정말라며 괜찮다고 안심시켜주었습니다.
그렇게 첫 전세집을 가는가 싶었는데, 이삿날 마무리 짐을 다 옮겨갈때쯤 안전안내 전단지를 나눠주는 동사무소 직원과 마주쳤습니다. 무슨일이냐고 물으니 여기가 매년 장마철 침수 지역이라고 조심하라는 안내서라고 주고 가는게 아니겠어요? 오마이갓… 이제 막 이사를 다 하고 잔금을 치렀는데 침수건물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곧바로 부동산에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주인 할머니는 침수되는 집이 아니라며,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리씬 죄송하지만 여기서 살 수 없을 거 같으니 나가야겠다고 했고 주인 할머니는 갑자기 욕을 하며 어린것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딴지를 건다고 그녀를 몰아붙였습니다. 나갈려면 양쪽이 부동산비용을 다시 다 내라는 억지를 부리면서요.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화나고 억울한 마음에 쏟아지는 눈물을 꾸욱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말라고 말하며 나왔습니다. 문을 열고 나옴과 동시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데 너무 서럽고 또 서러웠습니다. 왜 그리 서럽게 느껴졌는지.. 뭔가 무리씨가 어리고 돈이 없고 여자라서.. 그리고 혼자여서 그런건가 싶은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뭔가 무시당하고 사회적 약자가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어 억울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이런일이 생긴 것만 같고..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속상했습니다.
결국 억울한 표현도 제대로 못한 채 부동산 비용을 또 내고 침수 걱정이 없는 2층의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월세의 삶이 이어졌습니다. 삶은 생각한대로 살아 지지 않았습니다.

반지하 사건 이후에도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었고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그렇게 2,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어 생각해보니 그 때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나름 힘든 일들이었지만 지나고보니 더한 일들을 겪게 되더라구요. 원치않게 억울한 사기도 당하게 되고,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알게도 되고,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은 나이가 들 수록 남의 일이 아닌게 되고..
어떤 일도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려움을 견디며 세월에 맡기고 그저 살다보니 굳은 살처럼 조금씩 단단해지는 부분이 생기는 건 있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사는 건 쉬워 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치만 그만큼 내공도 쌓일 것이기에,
쉽고 편하게 나이 드는 것을 꿈꾸기 보다 굳을 살 생겨도 그저 그 순간을 잘 살아보고자 합니다. 쉽진 않지만 어렵지만도 않은 게 삶이니까요.

그 또한, 지나가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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