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팀장을 그만두고 싶었던 날

by 미생팀장

그날은 인사 평가 문서를 쓰는 날이었다.


회의실 불은 이미 꺼져 있었고,
노트북 화면만이 테이블 위를 비추고 있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층 전체에 사람 기척은 없었다.


평가 대상자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올해 내내 같이 일했던 사람들,
회의실에서 얼굴을 마주했던 사람들.


커서를 옮겨
첫 문장을 쓰려다 멈췄다.


평가는 늘 그렇다.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문장으로 옮기려면
모르는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 사람의 어떤 선택을 적어야 할까.
어디까지를 책임으로 봐야 할까.'


문서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한 해를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해야 하는 자리.


그 문장들이
평가가 되고,
기록이 되고,
나중에는 그 사람의 다음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런 결정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판단하고,
순서를 매기고,
다음 자리를 가늠하는 일.


이게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손을 키보드에서 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회의실은 조용했고,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그 생각이 올라왔다.


'그만두고 싶다.'


팀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분노나 좌절에서 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한 순간에 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노트북을 덮을까 하다가
다시 화면을 켰다.


평가 문서는
여전히 첫 문장에서 멈춰 있었다.


그날은
끝내 한 줄도 쓰지 못했다.


회의실을 나서며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문을 닫는 순간,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겠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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