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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Jul 06. 2023

아침 산책길


이른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기 전에 을 나섰다.


아파트 앞 현관에는 젊은 새댁들이 올망졸망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싱그러운 웃음을 피우는데


숲을 오르는 계단을 오르자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나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지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어둠을 몰아내듯 숲을 휘 한번 돌아보자


저 멀리 아이라도 잃어버린 듯

새 한 마리가 아악 아악 하며 구슬프게 우는데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앉은 이름 모를 새 한쌍이 

짹짹짹 경쾌한 노래를 부르네.


깊은 숲에 이르자 다람쥐 한 마리가 재롱을 피우듯

곡예를 하며 마른나무 가지 위를 오르내리고


잎이 푸른 나무 한그루가 넝쿨 같은 뿌리를

위에까지 뻗으며 보란 듯이 넘실거리는데


며칠 내린 비로 이끼처럼 축축한 땅 위에

어린 개미떼가 줄을 지어 어디론가 바삐 걸어간다.


수한 트로트를 따라 콧노래 흥얼거리며

휘적휘적 지팡이를 짚고 어제처럼 산책을 즐기시는  

편안한 얼굴의 노신사 한분이 길을 비켜주는데


부지런한 개미같이  땀을 닦으며

내 옆을 휙휙 스쳐 지나가는 눈에 익은 얼굴들.


바퀴 지구같이 둥근 길을 오가며 

바라본 건너편 호숫가

연꽃의 우아한 자태에 정신을 잃었는데


한상 가득 차린 밥상처럼 나의 아침 산책길은

풍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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