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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Aug 17. 2023

지난 사월


지난 사월,


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거리를 점령한 날에

무성음처럼 사방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하얀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내 마음 별처럼 총총하였는데


연초록 나뭇잎과 화들짝 미소 짓는 꽃들이

사각사각거리는 햇살에 찰랑거리는 봄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며 들뜬날에


갱년기가 온 것인가

망망대해에 홀로 출렁이는 돛단배처럼

내 마음 우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성경말씀을 들어도 경쾌한 음악소리도

찬란한 햇살도 총천연색 아름다운 자연도


흑백사진처럼 어두운 그림자 덜어내질 못하였고

멀리 있던 죽음 어느새 내 목전 앞에 있었다.


포근한 담요 같은 죽음이 내게 손짓하며

나는 저항 없이 꿈속처럼 그 안에서 유영을 하는데


지난날 반추하며 침 흘리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네.


어둠 같은 죽음 항상 멀리 있다고

아직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며 그렇게 붙든 삶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그것을 동경하였다.


바람 많이 부는 사월에는 해마다 몸살을 앓으며

옷자락 여미듯 마음 단속을 하였는데


새벽안개처럼 스며든  박쥐 같은 죽음에

나는 진검을 휘두르는 장수처럼 그것을 뿌리치며


밭을 매다 금방 돌아온 아낙네가 되어

다시 옷을 개고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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