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주말 아침

by 박 혜리


이른 새벽, 요란한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내려와 밖을 내다보니 물안개가 피어오른 듯 희미한 여명아래 장대 같은 비가 사선으로 내리 꽂히는 중이었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더니 또다시 한바탕 세상을 삼킬기세다.


부엌의 창을 창틀 바깥쪽으로 여미고 조금 더 잠을 자야겠다 싶어 거실로 베개를 들고 나와 소파에 누웠다. 우르릉 쾅 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며 머릿속이 아득해지는데 두 시간쯤 잤을까 빗소리에 다시 잠이 깬다.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보니 그 사이에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젊을 때는 항상 잠이 부족하다 생각하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았던 눈꺼풀이 밀려나며 눈이 일찍 떠지며 아침잠이 줄었다. 주방으로 가서 다기를 꺼내어 잎 녹차 한티스푼을 띄우고 정수기물을 받는데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저 멀리 맞은편 산을 바라보니 연무 같은 구름이 산아래로 내려와 바람을 따라 떠다닌다. 비가 그친 후나 햇살이 퍼지기 전인 이른 아침에 가끔 볼 수 있는 장관인데 나는 잔을 들어 차를 마시며 맛을 음미해 본다. 혀끝에 감도는 익숙한 씁쓰름함이 목울대를 지나니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하며 연거푸 세 번을 우려내어 마시니 잠이 확 달아난다.


식구 중 제일 먼저 일어나는 나는 엄마를 보러 가거나 나들이할 계획이 없으면 이른 주말 아침 사방이 고요한 시간에 책을 읽거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브런치에 발행한 글 중 일부를 수정하거나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노트북을 켜는데 휴대폰에 알람을 해놓은 브런치스토리글 몇 편을 읽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늘 점심은 막내가 전날 미리 서치하여 정한 메뉴로 외식을 하기로 하였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든 막내는 여전히 일어날 기척이 없는데

잠을 깬 남편이 거실로 나와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준비하는 사이에 나는 계란을 삶고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야채를 씻어 요구르트와 견과류를 얹어 샐러드를 준비하고 내가 직접 만든 딸기잼과 함께 식탁을 차리니 아침상이 푸짐하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나서 나는 다시 앱을 켜고 마저 글을 읽는다. 설거지를 하고 뉴스를 보던 남편이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욕실로 향하였는데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손님을 끌기 위하여 하이마트 앞에서 양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춤을 추는 키다리처럼 양팔과 함께 몸을 흔든다. 수염을 정리하기 위하여 욕실의 거울 앞에 선 남편은 거실과 주방사이에 서서 내 모습을 지켜보며 입꼬리를 올리는데 이렇게 가끔 춤을 추며 소리 내어 웃으면 몸이 이완되면서 하루가 유쾌해졌다.


점심때가 가까워 올 무렵 어제 늦게 잠든 둘째를 깨워 교외로 나갔다. 비가 그친 도로 위를 창문을 열고 달리니 아직 물러나지 않은 늦더위가 척척 몸에 감기는데 우리는 아들이 먹고 싶다는 쌀국수 전문점에 주차를 하였다. 통유리창이 넓은 그곳은 대기하는 사람이 있어서 번호표를 뽑아야 했는데 일찍 간 덕분으로 웨이팅을 오래 하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쇠고기 쌀국수와 해산물과 야채를 볶아 오므라이스처럼 계란을 입힌 반쎄오 그리고 면과 해산물을 함께 볶은 볶음면을 주문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인지 한식에 최적화된 내 입맛에도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같은 건물 아래층으로 내려와 우리는 큰 화분과 작은 화분들이 군데군데 놓인 바다뷰가 멋있는 창이 넓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다.


잠깐의 외출을 하고 돌아와 수험생인 아들은 공부하러 방으로 들어가고 남편은 배가 부르다며 아파트 내 커뮤니티에 운동하러 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깐 눈을 붙여보는데 마치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경증적 발작으로 춤사위를 펼치며 웃음을 터트리는 영화 속 조커처럼 평소의 내 모습과 전혀 다른 내 안의 사차원세계 속에서 가끔은 춤을 추며 웃어보려고 한다.


오늘 저녁은 요즘 많이 나는 박과 쇠고기를 넣어 맑은 쇠고기박국을 끓였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려 집에서 요리를 하며 영화를 보았는데 갖가지 밑반찬과 가자미를 구워서 함께 먹으니 저녁 또한 한상 가득하였다.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파노라마 같은 하루를 보내며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내게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나는 행복감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