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사람

by 박 혜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던 어느 날, 어릴 적 친구인 동기들과의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시와 달리 읍내에 속해있는 조그마한 시골의 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같은 학교로 함께 진학을 하였는데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도 볼 겸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나는 전날 고향으로 내려갔다. 회색구름 속에 햇살이 간간이 얼굴을 내미는 따뜻한 겨울날, 몇 년 만에 볼 친구들 생각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내에 있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나는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며 오랜만에 우리는 수다를 떨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녁을 먹고 나서 거리로 나왔는데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친구들은 이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하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드니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는데 애창곡을 부르며 시계방향으로 순서를 매겨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평소에 가수 이문세 씨의 노래를 애청하던 나는 노래방 기기의 버튼을 누르고 "나는 행복한 사람"을 불렀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하고 즐겁게 놀다가 더 늦어지기 전에 우리는 집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진눈깨비는 그사이에 폭설로 변하여 발이 푹푹 빠지며 차가 다닐 수 없을 만큼 새하얀 흰 눈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얼어붙은 길 위에 더 이상 차는 오지 않고 우리는 할 수없이 같은 방향의 친구들끼리 모여 집까지 걸어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흡사 좀비 같은 모습으로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눈과 칼바람을 맞으며 하얀 들판 사이를 걸었는데 앞 서 걸어가는 친구와 보폭이 같아졌을 무렵 까만색 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옛 친구는 내 얼굴을 흘끔 쳐다보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물었다.


친구 : 혜리야 너는 시집 안 가나?


나 : 글쎄다. 아직 내 짝이 안 나타나네.


예상치 못했던 친구의 물음에 나는 '실은 나 오래전부터 너 좋아했어 나는 너한테 시집가고 싶은데......'라는 마음을 숨기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날 쌓인 눈길을 걷느라 신발이 젖어 발이 얼어붙은 것도 모르고 걷고 또 걸으며 나는 이 밤이 지나도록 친구와 오래 걸을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랐다.


한 반에 삼십여 명 안팎인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짝지를 바꾸어가며 수업을 들었다. 나와 여러 번 짝지를 한 친구는 시골아이 같지 않게 얼굴이 희고 공부 또한 잘하였는데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옆반에 있는 그 친구와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나는 수줍어하며 괜스레 가슴이 쿵쾅거렸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는 윤초시네 증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이 나오는데 딴 호두를 소녀에게 전하지 못한 소년처럼 엄마가 준 차비를 아껴 모아 산 작은 앨범을 친구에게 졸업선물로 전하며 나는 좋아한다는 말을 끝내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 한동안 우리는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인가 공대에 다니던 친구가 해군에 지원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몇 년 후에 우리는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탔다. 시골의 어르신들이 좌석을 차지하여 우리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는데 마치 어제 헤어진 연인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격의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타고 갈 환승버스를 기다리며 시외버스 정류장에 함께 있을 때 나무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라이트를 꺼내는 친구를 남겨두고 나는 등을 돌려 음료수를 사러 휴게실 매점으로 향했는데 담배를 태우는 친구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마냥 소년 같던 친구가 나는 처음으로 남자처럼 느껴졌다. 음료수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 도착하여 우리는 손을 흔들며 각자의 삶이 있는 곳으로 떠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아리따운 젊은 날의 내가 오토바이를 탄 친구의 부모님을 먼발치에서 뵐 때면 미래의 시부모님이라며 혼자 들뜨곤 했었는데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친구와 안부를 물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몇 년 후에 나는 결혼을 하였고 친구가 장가를 들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웨딩사진촬영을 하던 날, 내가 설 자리를 꾹꾹 다지는 남편을 향해 자상한 남편이 되겠어요라는 멘트를 날리던 갈대밭의 기사분의 말처럼 남편을 만나고 나서 나의 오랜 짝사랑도 끝이 났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첫머리에 적었다. 그는 여러 군상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는데 생각한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말처럼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혀있고 처한 상황 또한 좋지 않았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는 자기 암시와도 같은 노래를 부르며 나중을 기약하였고 지금 나는 내가 불렀던 노래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려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래전 눈밭을 함께 걷던 친구는 단체 밴드를 통해서나마 가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모기업에 재직하는 친구의 동네 옆에 사는 친구가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 장례식에 시간 맞춰 나타난 친구를 두고 재수 없는 놈이라 하였는데 얼마 전 업데이트를 하였는지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와 눈가의 주름을 잔뜩 잡은 안경너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며 나는 조용히 혼자 뇌까려보았다.


"친구야. 너도 이제 마~이 늙었네 "



https://youtube.com/watch?v=G8I_TS2xjPE&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