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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Dec 04. 2023

경조사

지난봄,  어릴 때 만난 친구들 모임인 동창회에서 경조사 문제로 찬반 투표를 실시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몇십 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봄 그리고 가을이나 겨울 일 년에 두 번 모임을 갖기로 하고 부모님과 배우자 부모님상, 본인과 배우자상에 보내는 조화와 부의금의 기준 그리고 자녀 결혼식에 보내는 축의금을 정하여 회칙으로 정하였다.


개인이 참여하여 부담하는  부의금이나 축의금은 논외로 하고 동창회에서 각 회원의  경조사에 보내는 금액을 정하는 것이 회칙의 수정 이유인데

동창회를 결성한 지 십 년을 지나면서  명의 멤버가 이탈하는 등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면서 해는 남은 회원 사십여 명과 함께 새로 회칙을 만들어 재정비하게 된 것이었다.


며칠 동안 투표를 진행한 결과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과반이상을 득한쪽으로 경조사 문제는 결론이 났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나라는 어디 가나 사람이 모이면 경조사가 문제구나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지금은 그만둔 모임에서 사촌과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노는 것을 좋아하여 모임이 많고 경조사 참석에도 진심인 사촌은 모임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친구들의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내게 들으라는 듯 이런 말을 하였다.


"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참석하는 거라고. "


나는 그때 지금보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단순히 친구들 얼굴 보는 것이 좋아서 모임에 나갔을 뿐이었는데 내 생각은 아랑곳없이 사촌은  뭔가를 주입시키려는 듯 경조사마다 참여하는 것이 관례라며 내게 강조를 하였다,

 

지난가을에 남편의 외가 쪽으로 결혼식이 있어 참석할 일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려 찾아 간 결혼식장은 앞에는 파르스름한 잔디가 깔리고  주위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심을 벗어난 골프장이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축의금을 신랑 측에 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는데 호텔이나 전문 결혼식장의 웨딩홀과 달리 직계가족과 친구 몇 명만 하객으로 초대하고  의자 몇 개와 앞 가장자리에 장식한 꽃이 전부인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신랑 측 의자에 앉아 그날의 주인공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나서 원형의 식탁이 있는 홀에서 친척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즐기며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좋은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자란 상부상조의 의미가 경조사이지만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신문기사의 내용과 같이 식대비에 못 미치는 혹은 비슷하게 축의금을 냈다는 이유로 축하하러 온 하객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을 보면서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남편의 외삼촌 아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여 좋은 직업을 가지고도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여유롭게 결혼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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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갓 치료를 마쳤을 때도 친척의 부의소식을 문자로 보내던 사촌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데 지나간 유물 같은 허례허식을 버리고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슬픔을 나눌 경조사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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