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할 때 영화를 본다

by 박 혜리


신혼 때 직장을 다니다 주말에 집에 머물 때면 남편은 좋아하는 액션 영화를 보며 쉬었고 함께 영화를 보던 나는 강아지가 엄마품을 파고 들 듯 따뜻한 신랑품에 안겨 영화 대사를 자장가처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 멜로물이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을 끝낸 후 케이블 tv 또는 넷플렉스에서 재방송을 하면 집에서 가끔 혼자 보았는데 액션이나 스릴러물 그리고 SF영화는 극장에서 가족과 함께 관람하였다.


내가 극장을 찾은 건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인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혼자 고독하였던 나는 어느 날 영화의 포스터가 이끄는 대로 갔는데 그곳에서 데미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하는 "사랑과 영혼"을 처음으로 관람을 하였다. 괴한에게 죽임을 당한 주인공이 복수를 한 뒤에 연인인 데미무어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한 후에 영혼이 떠나갔는데 여주인공이 눈물을 흘릴 때 그 영혼을 손으로 집을 수만 있다면 다시 청순하고 이쁜 그녀 앞에 데려다 놓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나는 애절하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세 번 정도 보면서 영화를 볼 때마다 여운이 새록새록하였는데 이 영화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각인이 되었다.


마흔을 일 년 정도 남겨둔 어느 날 큰 질병을 얻은 나는 먼저 수술을 하고 다음에 약물치료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차례로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매일 복용하고 호르몬 억제를 위한 주사를 맞았는데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감정의 기복이 생기며 마음 또한 가라앉았다. 또래의 친구들은 겪지 않아 함께 나눌 수 없는 이유로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였던 나는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극장을 찾아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나는 깜깜한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영이를 실화로 한 "소원"은 어느 비 오는 날 아침에 학교에 가던 소원이 술에 취한 남자에게 이끌려서 성폭행을 당하는데 어린아이의 크나큰 고통에 나는 함께 울었고 NLL을 넘어온 북한군의 공격으로 우리 국군 장병들이 전사하는 "연평해전"을 보면서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새 영화가 개봉하는 대로 극장에서 나는 영화를 보았다. 2년여 동안 그렇게 조조영화를 보러 다녔는데 스크린을 마주한 나는 가끔은 울고 때로는 울었으며 감동 깊은 영화엔 가슴이 뭉클하였다. 아마도 태어나서 그렇게 영화에 빠져들고 많이 보았던 때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은데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모습의 나와 마주치며 송곳같이 모난 것들이 다듬어지고 서운했던 것들은 가라앉았으며 내 안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호르몬이 줄어들어 무기력증을 겪으며 감정의 소용돌이에 헤매었을 때 영화만이 온전히 나를 치유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위적인 약물로 감정의 물결이 몽글거릴 때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침몰시킬 수 있었는데 그전에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던 나는 식구들이 나가고 혼자 남을 때면 바쁜 생활로 놓친 주옥같은 영화를 보기 위해 가끔 티브이 앞에 앉는다.


다행히도 약물로 억제했던 내 호르몬은 꾸준한 운동으로 정상수치로 돌아왔고 몸 또한 갱년기에서 벗어났다.


위로가 받고 싶을 때 가끔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