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즐거움

by 박 혜리


타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관계로 다른 지역에 사는 큰 아들이 일찍 수업을 마친 금요일에는 집으로 오곤 하는데 식사 준비를 일찍 마친 주말 아침에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 내게 가끔 아들은 물어보았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도 많은데 엄마는 책 읽는 것이 재미있어요?"


"재미도 있지만 엄마는 책 읽는 것이 습관이라서 그래"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아들의 생뚱맞은 질문에 대답한 것처럼 독서는 오래된 나의 습관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이웃집에 놀러 가면 한쪽 귀퉁이가 찢어진 잡지 같은 것이 간혹 눈에 띌 때가 있었다. 나는 마치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하기라도 하듯 종이 위에 찍힌 활자를 곁눈질하며 글자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는데 학교를 다닐 때는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가 들리는 집으로 가는 대신에 해가 질 때까지 학교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조용한 도서관은 나처럼 책을 읽는 아이들이 가끔 있었지만 우리 반 친구는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소공녀 같은 어린이 전집을 읽을 때면 부모님의 불화로 다친 마음을 위로받으면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나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 2학년 중간고사를 치르던 어느 날, 어제 읽은 책 내용이 궁금하였던 나는 얼른 점심을 먹고 조용히 일어나 늘 가던 곳으로 향하였다. 그날,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옆에 누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던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시험기간에 책을 읽는다고 꾸중을 들었다. 이후에도 점심시간마다 나는 틈틈이 도서관을 찾았는데 그 시절에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하여 애거쉬 크리스티가 집필한 추리물 또는 SF 같은 공상과학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다가 주위를 둘러볼 때면 마치 내가 거대한 서재에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도서관은 내게 방전된 삶의 충전소이자 따뜻한 요람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은 꼭 사서 읽었는데 새벽이 밝아오는 여명 속에 아침을 맞을 때는 책을 살 수 있는 여유보다 빨리 읽어버린 아쉬움을 달래야만 하였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게 당장 무엇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으며 생활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독서는 내게 서서히 체화되었는데 교과서에 실린 단편적인 내용에 궁금증이 더해져 이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고 같은 내용이지만 해석이 다른 책들을 함께 읽게 되면서 비교하고 분석하는 힘이 생겨 비평 의식을 기를 수 있었다. 또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울 수 있었는데 읽는 것이 바탕이 되면 혼자서 어학공부를 할 수도 있고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길 수도 있으며 공부를 더 해 보고 싶다 같은 갈망이 생기는 것을 보면 책 읽기는 내 삶의 자극제이자 나침반 역할을 하였다.


몇 년 전, 표준치료를 마치고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우리 첫 여행의 행선지는 중국이었는데 만리장성을 걷기 전에 중국 학생들이 봉기하여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마오쩌뚱의 사진이 걸려있는 천안문 광장 붉은색 건물 앞에서 우리 가족은 사진을 찍었다.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만든 붉은 수수밭은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이 쓴 "홍까오랑 가족"이 원작인데 중국의 격동기인 근현대사를 산둥지방 까오미 마을에 심어진 붉은 수수밭을 상징으로 한 책을 읽은 덕분인지 회전식으로 돌아가는 음식을 앞에 두고 보이차를 마실 때에 처음 와 본 중국이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미리 책을 읽은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집필한 리 영희 선생이 구술하고 임헌영 교수가 녹음을 하여 세상에 내놓은 "대화"를 읽을 때는 일제의 식민지를 살며 해방을 맞이한 후에 4.19 민주화 항쟁과 5.16 군사정변 같은 실제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때로는 저항하고 고초를 겪으며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하여 힘든 인생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들인 그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떠올리며 지난 역사를 알 수 있는 가이드가 되었다. 소설가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인간의 소외와 폭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깊이 사색하며 읽어야 했는데 나치치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린이 쓴 죽음의 수용소를 읽을 때는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는지 배우게 되었다.


어떤 이는 컵에 남은 물을 보고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 하고 어떤 이는 물이 이것밖에 없네라는 말을 한다. 가난한 시절에 비하면 많이 풍족해졌고 행복할 조건은 충분하였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당황스러울만치 나는 놀라곤 하였는데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주위 환경 탓을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독서를 통한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함께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기쁨처럼 책을 읽으며 내용을 음미할 때는 동행이 있다는 생각에 외로움마저 잊었는데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여 인스타에 올리는 것이 일상인 요즘 세대에게도 변방의 콤플렉스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자 지혜를 얻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길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 시인은 하버드 대학의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말하였다. 책을 읽을수록 더 읽을거리가 넘쳐난다는 점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우게 되고 어려움을 겪어 실의에 빠졌을 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을 보면 꾸준한 독서는 창의력이나 성공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가슴 뜨거웠던 청춘의 시간이 지나 눈이 나빠지고 열정마저 사라져 이제 예전만큼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내 삶의 유희인 독서하는 즐거움을 꽃 향기 그윽한 차 한잔을 끓여 마시며 이 가을에 나는 다시 만끽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