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일까, 회피일까
치매가 걸린 94세 할머니를 돌보는 딸과 손녀의 이야기가 담긴 롱롱티비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됐다.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딸과 손녀의 이야기는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흔들어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마치 현대판 고려장처럼 무심히 받아들였던 그 선택,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사회적 관습에 휩싸여 무의식적으로 따랐던 내 모습을 돌아본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이서 돌보지 못한 현실의 상황들. 요양병원은 때로 편리함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책감을 가리는 사회적 강자가 만들어 둔 통념이 되고 있다. 요양병원은 대안일 뿐, 사랑의 대체물일 수 없다.
부모가 자녀를 보살펴준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자녀도 부모를 보살피는 건 인지상정이건만,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실천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그 곁에 함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녀의 도리인 줄 알면서 행하지를 못한다. 먹고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한없이 작은 체구로 침대에서 잠든 엄마의 모습, 딸을 보면서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자고 가라"는 말을 한다.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이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했던 나, 엄마는 가는 것이 두렵고 외로웠던 것인데 미처 알지 못했다. 얼마나 적적하고 외로우셨을까,
당시 나는 건강한 부모님들을 부러워했다. 돌아보니 요양병원에라도 계셔 주셨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이기적이다. 과거의 나는 돌봄의 무게를 피하고 싶었고, 지금의 나는 그 무게조차 그리워한다. 작은 병실, 좁은 침대 위 엄마의 모습에서 인생의 계절들이 스쳐 지나간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엄마 모습이 지금은 내 마음속 가장 아프면서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쁘고 젊었을 때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