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도 민망했는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 건지.
그도 그날 이후 아무 연락이 없었다. 허무한 내 기분과 달리 행복해 보이는 그의 피드가 꼴 봬기 싫어 그를 언팔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확실하게 해놓아야 한다. 괜히 어설프게 끝냈다가 새벽에 '자니…?' 같은 이불킥 문자를 보낼 수도 있으니.
고민 끝에 최종 확인용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같은 마음은 아닌 거지..?'
한참 후에 그에게 온 답.
'미안해.. 노력해 봤는데 잘 안 됐어...'
하아... 눈물이 핑 돌았다. 아아, 자존심이 상한다. 노력은 얼어 죽을. 사랑이 노력으로 되니? 사귀지도 않는 사이에 구차해지긴 싫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쥐어짜 아무렇지 않은 척 문자를 보냈다.
'모임에서 보면 어색하겠다. 나 때문에 안 나오지 말고! 더 열심히 달리고!”
으으… 보내놓고 보니 더 한심했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눈물 모양의 이모티콘과 함께.
역시, 그린라이트가 아니었다.
작은 관심도 그리웠나 보다
회사 집, 회사 집. 반복되는 일상은 이제 지겹지 조차 않았다. 다만 아주 작은 희망, 어차피 안 될 걸 알면서도 복권을 긁는 마음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이벤트를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이대로라면 내 미래가 뻔했다.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다 쓸쓸히 늙어 죽겠지. 퇴직해선 연금에나 의지하며 살 거고. 평생 외롭고 쓸쓸하게.
남편도 없고 애도 없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나. 나이 더 들면 땅값 싼 지방에 전원주택이라도 지어서 친구들과 함께 살까 하는 생각. 그게 다였다.
어플이었지만 괜찮았다. 휙 던지는 플러팅이 아니라서, 하룻밤 만남을 위한 가벼운 시도가 아니라서 좋았다. 함께 길을 걸을 때면 나를 도로 안 쪽으로 걷게 하는 매너도, 밥을 먹을 때면 늘 나를 먼저 떠주는 다정함도 오랜만이었으니.
어렴풋이 둘만의 미래도 그려보았다. ‘결혼하면 이쯤에 살면 좋겠다. 아이는 어떻게 하지?' 뭐 이런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희죽거린 내가 창피할 뿐이다.
도대체 뭐가 부족했던 걸까.
관계는 왜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까. 약자는 늘 마음이 더 큰 사람이다. 망할 ‘관계 질량 불균형의 법칙(방금 내가 만들었다. 찾아보지 마시라)’
항상 한쪽은 무겁고 나머지 한쪽은 가볍다. 이럴 경우 마음이 더 기운 쪽은 늘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지…?’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 생각만 해봤자 머리만 아픈 문제. 자존감만 깎아 먹는 문제.
눈물이 핑 돌았다. 고작 두 달간 연락을 주고받은 남자에게. 역시나 자존심이 상한다. 안 그래도 한 해가 갈수록 자존감이 쭉쭉 빨려드는 기분인데 덕분에 3년은 늙은 것 같다. 친구들에게는 제대로 말도 못 했다. 이 나이에 웬 청승이냐고 한 소리 들을 게 뻔해서.
그는 마지막까지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아마도 모임 때문이겠지. 근데 이 나이에 친구는 얼어 죽을. 지금 있는 친구로도 충분하다.
한동안 바닥과 혼연일체가 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더럽고도 찐득한 기분. 그저 오랜만에 설렘이, 나에게는 오지 않을 작은 배려가 너무나 그리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