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말랭이는 추가
그를 만나기로 한 어느 날.
그의 집 근처 맛집에 가기로 했다.
나도 친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곳. 물론 가본 적은 없었다.
나는 일찍부터 일어나 꾸안꾸 룩을 준비하고 있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내추럴 룩에 투명 메이크업으로, 나이가 드러나지 않되 지나치게 동동 뜬 화장은 피해서.
"차 가지고 와?"
"응 “
"그럼 우리 집으로 찍고 올래? 이 근처니까 주차하고 같이 걸어 가자“
그는 문자로 집 주소를 찍어주었다.
'뭐야, 집으로 오라는 소리인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주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내가 주차할 자리를 봐주었다. 자상한 남자.
우리는 함께 그가 말한 맛집으로 향했다. 보쌈집이라고 했다.
사실 난 맛집에 큰 관심이 없다. 맛집 데이트는 이미 20대부터 지겹게 해 봤고 경험상 맛집에 대한 평가는 기다린 시간에 반비례하기에, 소중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허비하느니 차라리 덜 맛있는 걸 먹는 게 낫다는 게 신조였던 사람이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건만. 역시 연애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가 데리고 간 가게는 진짜 맛집 냄새가 풀풀 났다. 30년은 돼 보이는 간판과 오래된 노란 벽지,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들.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아 자리가 났다.
보쌈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아, 맛있겠다!"
"응, 어서 먹어봐. 여기 진짜 맛있어"
꼬들꼬들한 무말랭이에 보쌈을 하나 얹어서 먹어보려는 순간,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잠깐만!"
그는 옆에 놓인 배춧잎에 보쌈 하나, 겉절이를 하나 더 얹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그가 준 배춧잎을 앙 베어 물었다. 입가에 김치양념이 묻지 않을까,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진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조심스럽게. 혹시나 발그레진 볼이 티가 나지 않았을까.
"와아... 너무 맛있다"
"맛있지!"
이 집 보쌈은 수육 느낌이 났다. 야들 야들 쫄깃했다. 맛있다는 내 말에 그가 소년처럼 웃었다. 또다시 설레고 말았다. 이런.
“맥주 한잔 할까?”
내가 먼저 물었다. 분위기도 풀 겸.
“좋아, 근데 나 술 잘 못 마셔”
"알아. 나도 못 마시잖아. 그냥 한 잔씩만 하지 뭐"
카스를 한 병 시켰다. 나는 카스가 좋다. 특별한 향도 맛도 없이 그저 톡 쏘는 무맛의 맥주.
맥주를 가지고 오신 사장님이 말을 거셨다.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키가 작고 머리가 하얀 사장님.
“맛이 좀 어땨?”
“너무 맛있는데요? “
“하이고, 아가씨가 뭘 좀 아시네. 우리는 부위가 달라요. 방법도 다르고. 겉절이 많이 먹어. 오늘 아침에 새로 했댜”
“어쩐지 맛있더라고요. 앞으로 자주 와야겠어요!”
"아이고, 예쁜 아가씨가 자주 와주면 나야 좋지!"
나는 능숙하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 날 보고 그가 싱긋 웃었다.
나이가 들면 넉살이 는다.
맥주를 몇 잔 마시니 어느새 그의 얼굴이 금세 벌게졌다.
“어머, 술 아예 못 하는구나? 내가 괜히 마시자고 해가지고”
“아니야, 한 잔이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새 그는 목까지 빨개졌다. '정말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맥주 한 병과 보쌈 한 그릇을 금세 비워냈다.
"너무 좋다. 이런 맛집"
"다행이다. 나중에 또 오자. 이 근처에 오래된 짬뽕 집도 있어. 다음엔 거기 가보자"
“좋아!” 나는 살짝 신이 났다.
"커피 한잔 할래? 술도 깰 겸. 아니면 우리 집에 가서 차 마시자."
“으... 응?"
맞다, 여기서 그의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