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궁금해서
어차피 차를 가지고 가려면 그의 집으로 가야 했다.
어두워진 밤이었지만 야릇한 분위기는 없었다. 그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의 집은 SNS에서 많이 봤다. 우린 이미 인스타 친구였다. 스토리를 보니 그는 평소에도 사람들을 자주 초대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모임 사람들도 꽤 있었다.
“들어와. 뭐 마실래?”
“음... 따뜻한 차?”
“응, 잠깐만”
아까만 해도 졸던 그가 집에 오더니 눈빛이 밝아졌다. 그는 차를 내리면서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재개발로 지어진 새 아파트. 뷰가 훌륭했다.
옆동에 동생부부가 산다고 했다. 그들이 추천해서 자기도 이사 왔다고. 전세지만 곧 살 거라고.
‘어필하는 건가..?’
삼십 대 남녀에게 집 이야기에 민감한 주제다.
그는 차근차근 집을 설명해 줬다. 침실은 어디인지, 옷방은 어디인지. 집은 생각보다 간결하고 깔끔했다. 딱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공간.
"이 의자는 뭐야?"
거실 베란다에 생뚱맞게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정 가운데에 놓인, 창밖을 향해 있는 캠핑의자.
"멍 때리는 의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냥 앉아 있거든"
“어머, 나도야!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 움악만 틀어 놓고.
언제부터인지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제는 잠이 아쉽지 않다. 아니 사실 어떤 것도 아쉬운 것이 딱히 없다. 죽고 못 살 것 같은 연애도,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던 결혼도. 미련이 없다. 이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통화를 할 사람도 없으니 잠이 고프지 않았다.
우리는 차를 홀짝이며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서로 과거 이야기까지.
“전 여자친구하고는 왜 헤어졌어?”
"나이 차이가 많이 났어"
"몇 살?"
“9살“
“나이 때문에 헤어진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뭐라고 할까, 그 친구는 그냥 ‘태어난 김에 산다’는 느낌이었어
‘태어난 김에 산다... 멍청해서 헤어졌다는 소리인가...?‘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괜히 더 궁금해 질까 봐. 단편적인 사건 하나로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하긴 싫었다. 나는 별 거 아닌 말, 별거 아닌 일에도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무심코 던진 말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몇 번이고 곱씹는 것이다.
“으아, 가야겠다” 어느새 시간은 12시가 넘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돼”
“아냐, 내가 가야 너도 쉬지. 나도 슬슬 졸리던 참이었어.”
“그래, 그럼. 바래다줄게”
대리기사님이 왔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아까와는 달리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잘 가. 도착해서 연락해. ”
“응, 잘 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든 생각.
‘내가 너무 눈치 없이 나와 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