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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배터리가 없었어

배터리가 나갔다고?

by 새로운 Jul 25. 2024






다음 날 아침 그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카톡에 답도 없다. 오후 12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말이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연락하던 사람인데..’


결국 나는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삐-소리 후엔…'

'잉?'



한참 뒤에 그에게 문자가 왔다.



'늦게 일어났어! 부모님 댁에 갔다가 친구랑 밥 먹었는데 배터리가 나갔네. ㅋㅋㅋ 전화 온 거 지금 봤어'



느낌이 이상해서 우리가 처음 만난 소개팅 어플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아직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던 방이 남아있었다. 그는 대화방에서 나가고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상대방이 대화를 종료했습니다’ 오늘 오전 9:40



오늘 아침에 소개팅 어플에는 왜 접속했을까…? (우리는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중이다) 나한테는 늦게 일어나 부모님 댁에 갔다더니…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 우선 피하고 본다. 항상 그랬다. 직접 물어보거나 속마음을 말하지 않고 그저 입만 꾹 다물고 뚱해 있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고, 상대는 이유도 모른 채 답답해하는 대치 상황.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하아... 그만하자..."



상황이 어떻든 그는 여자친구 마음도 몰라주는 무심한 남자, 나는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이번에도 나는 결국 묻지 않았다.  








"뻔하지, 딴 여자 만나러 갔네"

"뭐?"

"순진한 놈. 어플로 만났다며? 너랑만 연락했겠니? 주말 오후면 각 나오잖아. 아니면 전화기는 왜 꺼놨겠어? 요즘 세상에 배터리가 나가긴. 어휴, 이 헛똑똑아."

".... "

"잘 안 됐나 보네, 금방 연락 온 거 보니"



두 달 넘게 동안 연락을 주고받았 건만.



그의 반달눈이 전 남자 친구를 닮아서도, 그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이 나이에도 이런 설렘을 느낄 수 있구나'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다.  




어쩐지 잘 풀린다 했다. 그러면 그렇지. 다 늙어서 무슨 연애야 연애는. 보나 마나 나보다 나보다 어리고 이쁜 애 만나러 갔겠지.




하아... 자존감이 눈처럼 녹아든다. 고작 대여섯 번 만난 썸남에게 이런 감정까지 느끼다니. 괜히 혼자 설레발치다가 또 이 꼴이지.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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