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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Jul 25. 2024

썸남에게 모닝콜하기

아.. 떨려...






모닝콜 미션을 받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띠이- 띠이-’      



다섯 번 정도 울렸을까. 그만 끊었다. 첫 전화인데 집요하게 깨울 순 없으니.

그는 두 번 다 받지 않았다.





“으아, 정말 미안해!!! 나 왜 못 들었지?!”      



결국 10시가 다 돼서야 전화가 왔다. 주말에도 6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나와 확실히 다른 사람이다.      



“괜찮아. 덕분에 아침도 챙겨 먹었어"

“미안해. 혹시 저녁에 시간 돼? 저녁에라도 뛸래?”     

 


저녁에는 약속이 있었다. 남자를 만난다고 하면 오히려 가라고 할 친구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쩌지, 저녁에는 약속이 있어"

“아니야, 다음에 같이 뛰자”

“그래”     



사실 무슨 옷을 입고 뛸까 한참을 고민했다.

‘옷은 좀 얌전하게 입어야겠다. 모자는 캡이 좋을까 썬 바이저가 좋을까? 반팔보다 나시가 낫겠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대보며 고민했다. 상의와 하의, 모자와 운동화까지 이리저리 대보고 맞춰 보고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했다.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는 워터프로프로 메이크업에 옷과 어울리는 타월까지 봐두었건만…



그 후로 서로 별 말이 없었다.

그는 민망했고 나는 속상했겠지. 정확한 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두었다. 그와 연락을 주고받은 후 처음으로 맘속에서 뭔가 걸리적거렸다.






하지만 어색한 기운도 잠시, 그날 이후로도

우리는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잘 잤어?” 굿모닝 인사로 시작해서

“잘 자!” 굿 나이트 문자로 마무리하며.



점심엔 뭘 먹었고 저녁엔 누굴 만났는지.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사사로이 나누며. 마치 연인처럼.




그리고 드디어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던 날.



나는 일찍부터 일어나 꾸안꾸 룩을 준비하고 있었다. 20대가 아니니 지나치게 꾸미는 건 주책이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내추럴 룩에 투명 메이크업으로, 나이가 드러나지 않되 지나치게 동동 뜬 화장은

피해서.



"차 가지고 와?"

"응 “

"그럼 우리 집으로 찍고 올래? 이 근처니까 주차하고 같이 걸어 가자“


그는 문자로 집 주소를 찍어주었다.


“차 번호 알려줄래? 등록해 둘게"


만나기도 전에 집주소와 차번호를 교환하는 사이라니. 그는 주차장에 미리 나와 있었다. 친절하게 내가 주차할 자리를 봐주었다.



자상한 남자다.



“보쌈 좋아해? 저번에 말한 맛집이야"

“으앗, 기대돼!”     



사실 난 맛집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맛집 데이트는 이미 20대부터 지겹게 해 봤고 경험상 맛집에 대한 평가는 기다린 시간에 반비례하기에, 소중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허비하느니 차라리 덜 맛있는 걸 먹는 게 낫다는 게 신조였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이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건만. 역시 연애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그가 데리고 간 가게는 진짜 맛집 냄새가 풀풀 났다. 30년은 돼 보이는 간판과 오래된 노란 벽지,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들.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아 자리가 났다.



“맥주 한잔 할까?”

내가 먼저 물었다. 맹숭맹숭한 데이트는 별로다.



“좋아, 근데 나 술 잘 못 마셔”

"나도야, 마셔봤자 한 잔"



카스를 한 병 시켰다. 나는 카스가 좋다. 특별한 향도 맛도 없이 그저 톡 쏘는 무맛의 맥주.



곧이어 보쌈이 나왔다. 맛있어 보이는 무말랭이와 겉절이와 함께. 그는 나에게 먼저 고기를 덜어주었다. 빨갛게 익은 겉절이 하나를 주욱 찢어서.



"이렇게 먹어봐, 맛있어"

"와... 너무 맛있다"

"맛있지!"



그가 소년처럼 웃었다. 또다시 설레고 말았다.

그나저나 이 집 보쌈은 수육 느낌이 났다. 야들 야들 쫄깃했다.   



맥주를 가지고 오신 사장님이 말을 거셨다.



“맛이 좀 어땨?”

“너무 맛있는데요? “

“하이고, 아가씨가 뭘 좀 아시네. 우리는 삶는 부위가 달라요. 방법도 다르고. 겉절이 많이 먹어. 오늘 아침에 새로 했다”

“우와, 감사합니다”



사장님과 이야기하는 걸 보고 그가 싱긋 웃었다.

나이가 들면 넉살이 는다. 할아버지 사장님을 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아쉽게도 겉절이는 많이 먹지 못했다. 빨간 양념이 입에 묻을까, 고춧가루라도 낄까 봐.



맥주 한 잔을 마신 그의 얼굴이 금세 벌게졌다.



“어머, 술 못 하는구나? 내가 괜히 마시자고 해가지고”

“아니야, 한 잔이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새 그는 목까지 빨개졌다. '정말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곧 보쌈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너무 좋다. 이런 맛집"

"다행이다. 나중에 또 오자. 이 근처에 오래된 짬뽕 집도 있어. 다음엔 거기 가보자"

“좋아!” 나는 살짝 신이 났다.



“음… 커피 한잔 할래? 술도 깰 겸" 그가 말했다. 여전히 빨간 목으로.

“응, 그래”



근처 커피숍으로 향하는 길, 오래된 골목이라 비탈진 도로가 울퉁불퉁했다. 힐을 신고 나온 나는 순간적으로 넘어질 뻔했다.



"으아아-"

"엇, 조심해"



나도 모르게 덥석 그의 팔을 잡았다. 탄탄한 그의 전완근이 느껴졌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마신 맥주 때문인지, 그의 팔근육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잠시 후 좁은 도로로 차가 지나갔다. 그가 살짝 내 어깨를 감싸 도로 안 쪽으로 걷게 해 주었다.




"빙수 좋아해?"

"응! 빙수 먹자"



보쌈은 그가, 빙수는 내가 샀다. '식사는 남자, 커피는 여자' 불문율을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앞장서면서 티 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냥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지 뭐’  



커피를 시키고 대화를 이어 나가는데 그가 피곤해 보였다. '아까 마신 맥주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아직 그의 목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 정도로 술을 못 마시는 남자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내 미안해졌다.  



"그만 일어나자. 내가 괜히 술 마시자고 해가지고 “

"아냐, 더 있어도 돼"

"담엔 낮에 보자. 술 없이"

“음... 그럼 집에서 차 한잔하고 갈래?”

“으으응...?”    



맞다, 여기서 그의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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