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읭?!!
어플에서 나에게 '좋아요'를 누른 남자.
어딘가 낯익어서 자세히 보니 세상에, 이 사람 아는 사람이다.
등에 식은땀이 나고 얼굴이 벌게진다. 친한 사람 몇 명에게만 말했을 뿐 어플 하는 걸 지인들이 알게 될까 얼마나 조심했는데.
설정에서 ‘아는 사람 만나지 않기’를 몇 번씩 확인하고 연락처도 계속 업데이트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내 연락처에는 그가 없다.
으아, 이런 식으로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싫었다. 친하지도 않고 애매하게 아는 사람을 여기서 보는 건 곤란하다. 이미 누른 좋아요를 취소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할 수 없이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저 00님 아는 분 같아요!"
"아...?"
다행히 그는 나를 금방 알아봤다. 그는 나만큼 당황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알고 보니 우린 동갑이었다.
"그럼 우리, 말 편하게 할까?"
“그럴까?”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어떤 이와는 온라인에서부터 대화가 힘들다.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거나 도저히 웃어 줄 수 없는 농담을 해서 만나기 전부터 호감도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그는 그렇지 않았다. 모임에서는 제대로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말수가 적은 줄 알았는데 실제론 위트도 있고 재미있었다. '낄끼빠빠'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답이 빨라서 좋았다.
이 나이쯤 되면 단순한 밀당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살짝 밀어보려다 완전히 나가떨어지거나 조금만 당기려다 완벽히 끊어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기에. 초반부터 애매하게 굴면 애초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 바빠서 연락하지 못했다는 건 다 핑계다. 중요한 건 시간이나 여유가 아니라 의지의 차이일 뿐. 그는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연락하면 답장이 바로 왔고 생각날 때면 이미 문자가 와 있었다.
게다가 그는 멀끔히 잘 생겼다. 키도 크고 훤칠하고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보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게 분명했다.
사실 그에게 끌렸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전 남자 친구를 닮았다. 10년을 만난 전 남자 친구. 느릿느릿한 말투 하며 웃을 때 생기는 한쪽 보조개 그리고 반달눈까지. 몸에 베인 친절과 상냥한 웃음, 대답할 때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도 비슷했다.
우린 며칠간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 안에서 오랫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이 스멀스멀 되살아 났다.
하지만 설레발은 금물이다. 그럴듯한 외모에 속은 게 어디 하루이틀인가. 저렇게 멀쩡한 사람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어딘가 하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째 채팅만 이어지고 그는 도무지 만나자는 말이 없었다. 채팅창에서만 대화를 주고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결국 먼저 말을 꺼내고 말았다.
“뭐 하고 있어? “
“나 집에 있어”
“시간 괜찮으면 나올래? 나 OO카페거든 “
나는 혼자 카페에 가곤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노트북을 들고나가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날도 마침 혼자 카페에 있었다. 그도 아는 곳. 종종 모임 사람들과 함께 오는 카페였다.
“사거리 그곳?”
“응, 괜찮으면 와서 커피 한잔해"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니야? “
“아니야, 나 하던 일 거의 다 끝났어”
“그럼 나가면서 연락할게"
“응!”
그는 고민 없이 바로 나오겠다고 했다.
‘아니, 이렇게 바로 나올 거였으면 그동안 왜 보자는 말을 안 한 거야…?‘
잠시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지웠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이렇게 바로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집과 카페는 차로 10분 거리. 남자들은 준비가 빠르다. ‘아이고, 급하다 급해’ 빠르게 차에 가서 파우치를 꺼내와서 얼굴을 정돈했다. 머리를 다시 묶고 선크림을 발랐다.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게 포니테일로 묶고 잔머리도 자연스럽게 끄집어냈다. 차에 있던 휴대용 구강청결제를 입에 쏟아부었다.
이제 정기적으로 보톡스를 맞지 않으면 금세 주름이 올라오는 나이. 가만히 있어도 피부 좋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이제는 뭐라도 발라야 탱탱해 보였다. 파우더가 없으니 우선 톤업 크림이라도..!! 허둥지둥 얼굴을 정돈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살짝 쳤다.
‘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