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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운 치아바타 빵의 남자

술기운 1도 없는 6시간의 대화

by 새로운 Jul 25. 2024





“안녕!”      





“아, 앗 앗... 어! 왔어?” 


(으아.. 촌스럽게 왜 혼자 놀라는거야!) 




“정말 혼자 있었네? 원래 커피숍 혼자 잘 와?"


"응, 난 혼자 와. 하핫" 





"신기하다. 나는 혼자 잘 안 가는데. 근데 저녁 먹었어? 배 안 고파?”     


"응, 괜찮아" (사실 배가 고팠다)






그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알아서 함께 먹을 빵과 커피까지 주문해 왔다.


    





“와아, 고마워. 나 이 빵 좋아하는데"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치아바타. 


서걱서걱해 보이는 겉에 속에는 몽글몽글 구멍이 뚫린 약간은 애매한 빵. 





그냥 먹으면 밍숭밍숭하지만 발사믹 식초가 살짝 든 올리브 오일을 찍어 먹으면 맛이 좋다. 그는 마침 까만 올리브가 쏙쏙 박힌 녀석을 골라왔다.


     




'뭐야... 이 센스...?' 





잠깐만. 아니다. 


이러면 안 된다. 이 정도에 반하면 안 되지. 정신을 차리자.





언제부턴가 자꾸만 의심이 는다. 누군가의 작은 호의도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반대로 그럴 리 없다고 축소시켜 밟아 버린다. 이제는 다치면 오래가니까. 몸도 마음도 회복이 더디니까.





"와아,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좀 어색하긴 하다. 하핫"


"그렇지? 큭큭





그가 수줍게 웃었다. 둘이 이렇게 말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우린 이런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날씨 이야기, 근황이야기 등. 




 


그는 나이 또래 남자들처럼 능글맞지 않아서 좋았다. 


너무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아보이는 말투. 


담백하고 산뜻한 그런. 






대화 주제가 떨어질 때쯤 그가 운동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 우리에게는 공통사가 있었다. 바로 뜀박질. 







“보통 얼마나 뛰어?”


“음.. 일주일에 다섯번?" 


"우와, 달리기에 진심이네. 보통 여자들은 많이 안 뛰는데"


"진심이라기 보다, 그냥 좋아서 뛰어"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뛰었어? 계기가 있어?”


"음... 남친하고 헤어지고부터?"


"푸하하. 나랑 똑같네"      








남녀 사이에 공통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어렸을 때야 설레는 마음만으로 충분했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남녀에게는 감정이 전부가 아니니 말이다.





30대. 타오르는 감정의 기회비용과 유통기한을 알게 되는 나이. 사랑에 의욕 없는 이들을 억지로 끌어 다가 좋아하는 관계까지 나아가게 하는 건, 불 같은 감정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작고 소소한 교집합인 것을.





취미가 같은 우리는 쉽게 말이 통했다. 먼 곳을 빙빙 돌아 의미 없는 말만 늘어놓는 소개팅과 달랐다.      





“전에는 무슨 운동했어?”      


"나? 많이 했지 이것저것"





그는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헬스 크로스핏 등산 자전거 등등.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달리기라고 했다. 여러 가지 운동을 전전하다 뜀박질에 정착한 나와 비슷했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나보다 훨씬 더 운동을 많이 한다는 점. 하지만 상관없다. 아니, 그런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선 모든 장애물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 돼.






그동안 까다로운 사람인줄만 알았던, 남들에게 내세웠던 촘촘한 잣대들이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에게선 언제 그랬냐는 듯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 기준들은 사실 좋아하지 않는 감정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학창 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님 카페 영업 종료시간입니다”



'어머, 벌써..?!'




5시에 만나 11시,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 한잔 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올리브 치아바타를 먹으며 말이다.


       




“혹시 내일 아침 같이 운동할래? 주말에는 아침에 뛰거든" 그가 말했다.


"...그럴까?"


"응, 나 좀 깨워줄 수 있어? 아침잠이 많아서"


"내일 아침....? 그, 그럴까...?”


  





그도 나에게 반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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