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건 네 탓이지

그게 왜 내 탓이지?!

by 새로운




"헤어지자"



언제부터인지 이별의 말이 ‘넌 역시 안 돼, 임마’로 들리던 시점이 있었다. 헤어짐이 상실의 슬픔이 아니라 실패의 열패감으로 느껴지던 순간. 그 시점은 아마도 연애를 사랑이 아닌 결혼을 위한 예선쯤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관계 자체를 사랑이 아닌 승패 여부로 판단하다 보니 이별이 곧 나의 성적표처럼 느껴졌다. 결혼이 되면 A+, 이별하면 F. 이 정도면 학사경고다. 분명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엉망이면 사람이 스스로를 바보라고 여기게 된다. 이번에도 실패했으니 나는 무능하고 가치 없는 놈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헤어지자고 말하던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고, 나에겐 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나는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려 노력했고, 읽히지 않는 그의 마음을 읽으려 애썼다. 오래 만난 것도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아팠다. 슬프고 괘씸했다. 하루는 괜찮았고 하루는 슬펐다.

그 이후로 꽤 오래 침울했는데 우울한 감정을 억지로 들춰보니 다 나 때문이다. 이별을 패배로 느끼며 여자로서의 매력이, 이성으로서의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퍼다 나르기 바빴으니.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그 이후에도 대부분의 이별은 '나 진짜 별로인 가봐...' 하는 찌질한 마음으로 떠올랐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둔 언니가 있다. 선생인 나에게 학교의 시스템과 교사들이 시험을 대하는 태도 등에 전반적인 학교 시스템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수행평가는 어떻게 보는지, 시험 문제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등. 성의껏 답 해주지 못했다. 슬프게도 조카는 영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그녀는 절박해 보였다.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왜 그렇게 아이 성적에 집착하느냐고. 언니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아이의 점수가 마치 자신의 점수 같다고. 아이의 성적이 낮으면 엄마로서 무능력하게 느껴지고 성적이 좋으면 엄마로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순간 언니에게서 내가 보였다. 조카의 점수가 언니의 점수가 아니듯, 그와의 이별이 나의 점수는 게 아닌데. 조카는 공부가 싫었고 우리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이별이 굳이 내 잘못만일 리 없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못했을 뿐.






연애는 결혼을 위한 예선전이 아니다.


그러니 연인과 헤어졌다고 좌절할 필요도 딱히 없다. 결혼이 연애의 토너먼트 경기 같이 느껴질지라도 거듭되는 패배가 내 탓처럼 느껴지더라도 그와 내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건 선수로서 무능함이 아닌 것을. 그냥 어쩌다 보니 경기가 끝난 것이다.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욱 다행이고.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실패를 낙제로 받아들이면 생이 괴로워진다. 그러니 이별을 '이번 경기 끝, 새로운 경기 시작!' 정도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똥차 떠났으니 벤츠 올 거라고, 우린 원래 후반전에 강한 타입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니면 차라리 그놈을 욕하자. 이럴 땐 차라리 남 탓이 낫다.



배경이미지 Unslplash, Elivas Vica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