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방송인 주우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30대 연애의 고됨에 대해 토로했다.
“20대에는 10개 중 1개만 맞아도 만났는데 30대가 넘어가니 10개 중 1개만 안 맞아도 힘들어요”
나이가 드니 연애가 쉽지 않다. 매사에 어영부영 우유부단한 성격도 선택지 앞에서 늘 망설이는 결정장애 성향도, 나이가 듦에 따라 나름의 호불호와 기준이 생기는 바람에 남자 보는 눈만 더 까다로워졌다. 안 그래도 사람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데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에 사람에게 집중하기 힘들고, ‘어차피 또 헤어질 거 뭐 하러 만나’하는 허무주의, ‘감정 낭비, 에너지 낭비하기 싫어!’하는 효율성 추구까지 더해지며 진입장벽만 높아졌다. 이런 내가 투덜대면 지인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눈을 낮춰!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야”
내려놓으라고?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고? 근데 왜 나는 아직도 그놈이 그놈 같지 않고 그놈, 이놈, 저놈, 요놈 다 다르게 느껴질까? 나이가 들면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첫인상만 봐도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데 난 왜 아직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건지.
나는 그가 이랬으면 좋겠다.
얼굴은 너무 못 생기지 않았으면, 성격은 유들유들 곰돌이 푸우 같았으면. 가족은 잘 챙기되 지나친 효자는 아니길 바라고 지금은 좀 덜 벌어도 비전이 보이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양말에 샌들을 매치하는 패션테러리스트는 아니길, 운전대를 잡으면 헐크로 변하는 난폭운전자 역시 아니었으면. 상사 욕을 하면 ‘네가 잘못한 거네’ 보다 ‘자기 힘들었겠다’ 정도의 공감능력은 갖추고 있었으면 좋겠고 ‘아’ 하면 ‘어’할 수 있는 티키타카가 가능하면 감사할 것 같다.
매번 빵빵 터지는 유머감각은 아니어도 최소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진지충은 아니길, 가진 게 없어도 매사에 감사할 줄 알 수 있는 사람이길, 사물을 볼 때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일을 할 때 안 될 이유보다 될 이유를 찾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 살이 쪄도 귀엽다고 해주었으면 좋겠고 다투는 일이 많아도 금방 화해할 수 있는 이었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시니컬하지 않고 적당히 무난하고 적절히 융통성 있었으면 좋겠다. 상황에 따라 아는 것도 모른 척할 수 있는 눈치의 소유자였으면, 대체로 져주더라도 타협하지 않아야 할 땐 단호했으면 좋겠다. 남 앞에서 쉽게 주눅 들거나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길.
운동을 즐기진 않아도 스트레스는 스스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길,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고 도박이나 게임중독은 아니길. 사과에 인색하지 않고 감정표현에 자연스러웠으면. 지나치게 강박적이거나 예민하진 않고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 돼 속은 부드러운 ‘겉바속촉’의 남자였으면 좋겠다. 살인미소는 나에게만 날려줬으면 좋겠고, 바람 같은 건 평생 피지 않길 바란다.
아아, 역시 이번 생은 글렀다.
*배경 사진 Unsplash, Mads Schmidt Rasmu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