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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Oct 03. 2016

원래 까매요?

한국에 오면 적응해야 하는 것




한국에 오면 적응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단연 첫 번째는 까맣게 태닝 된 내 피부에 대한 각종 코멘트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들이다. 특히 저번 휴가 때 왔을 때는 한겨울 때라 다들 하얗게 질려있는데 나 혼자 잘 구워진 토스트처럼 눈에 띄어서 교포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메이크업도 그렇고 풍기는 느낌이 좀 달라진 건 맞는 것 같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뭔가 "쟤는 한국애야 외국애야"하는 궁금증을 품고 한 번 더 쳐다보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이마트에서 과일을 고르는데 옆에 있던 아줌마가 너무 대놓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봐서 민망했던 적도 있다. 미용실에 가면 늘 받는 질문이다. 

"원래 까매요? 외국에서 사세요? 일부러 태우신 거예요?"





베트남의 한 해변에서. 나 다워서 좋은 사진





결론부터 말하면 난 어렸을 때부터 까맸다. 게다가 햇빛을 받으면 그대로 쫙쫙 흡수하는 피부 덕에 이모가 사시는 포항에 여름휴가라도 다녀오면 정말 새까매졌다. 어렸을 땐 동네 친구들이 ‘아프리카 시컴둥이’라고 하도 놀려대서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는 미백크림도 바르고 나름 하얘져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까만 효리언니가 섹시 아이콘이 되면서부터인지 나도 내 피부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뭐니 뭐니 해도 구릿빛 피부를 나의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사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백인”들 조차도 건강하게 태닝 된 구릿빛 피부를 선호한다. 물론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고수하는 친구들도 있고 하얀 피부가 너무나 잘 어울리고 인형처럼 예쁜 친구들도 수두룩이지만, 솔직히 말해 태우고 싶어도 예쁘게 타지 않고 시뻘게지기 때문에 “태우지 말아야 하는, 태울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대학생 때 캐나다 친구를 만나게 되어 이런저런 수다를 많이 떨었는데, 그 친구 말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넌 얼굴이 참 하얗다, 넌 머리가 작아서 좋겠구나, 등의 말을 나름 칭찬이라고 하는 게 참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사실 "하얗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You are so white"라고 말해버리면 (이렇게 쓰지도 않거니와) "창백하다"라는 뜻의 "You look so pale"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너 참 하얗다는 말은 “넌 밖에서 스포츠도 안 하고, 친구들이랑도 안 어울리고, 집에만 있는 지루한 애구나”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머리가 작다는 말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굉장히 모욕적인 말로 들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금붕어 뇌, 새대가리라는 표현과 비슷하게 오해할 수 있다면 얼추 맞는 비유다. 








크루즈, 다름이 즐거운 세상






단일 민족인 우리와는 달리 대부분의 유럽권, 미국, 호주 등의 나라에는 다인종이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외모에 대한 코멘트에 굉장히 민감하고 말할 때도 서로 조심한다. 특히 60개국 나라에서 온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일하고 다양한 게스트들을 만나는 크루즈라는 공간에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수적이고 엄격하게 지켜진다.


크루들 사이에서는 일 못하고 성격 더러운 사람보다 Racist, 즉 인종주의자를 더 우습게 보고 상대도 하지 않는다. 일단 말하려면 두 번 생각해야 하고, 무의식적으로라도 혹시 내가 인종차별적, 성적인 농담으로 이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다면 반드시 사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HR에 고발당해서 경고를 받거나 더 나아가서는 짐을 싸는 일이 직급을 떠나 비일비재하다. 


이건 게스트와 승무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크루가 지켜야 할 선이 있다면, 게스트가 지켜야 할 선도 분명히 있다. 크루가 회사 방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퇴출당할 수 있는 것처럼 게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크루즈를 타면 첫날 배달되는 종이가 한 장 있다. 바로  Guest Conduct Policy(GCP, 고객 행동 방침)에 대한 안내이다. 특히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게스트에 대해서 크루는 얼마든지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사태가 심각한 경우 선장의 권한으로 GCP에 의거하여 다음 기항지에서 쫓아낼 수 있다. 물론 게스트가 우선이고 언제나 존중의 대상이지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게스트라면 회사는 예외 없이 크루의 편을 든다.









모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즐기는 분위기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왔을 때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이 있다. 우리 세대에는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다름을 인정하기보다는 수군수군하고, 자기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거나 걱정형 코멘트를 날리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 게 가장 좋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다른 모양새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어차피 나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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