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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Dec 05. 2016

크루즈, 위험하지 않냐고요?

비상안전훈련 없이는 출항도 불가능하답니다





지금부터 비상안전훈련을 시작합니다

배 전체에 사이렌 알람이 일곱 번 울려 퍼진다.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큰 소리의 알림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생길지도 모르는 긴급사고의 가능성을 대비하여 철저히 단련하는 것이다. 



모든 승객들은 크루즈가 항구를 떠나기 30분 전, 의무적으로 비상안전훈련(Muster Drill)을 받는다. 체크인을 하면 받는 씨패스카드가 있는데 이 카드는 룸키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크루즈 안에서의 모든 구매, 아이디 역할을 하는 멀티플레이어이다. 그런데 사실 이 씨패스카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따로 있다. 바로 이름보다도 훨씬 큰 글씨로 적혀있는 비상시 내가 가야 할 위치(스테이션)의 번호이다. (최신 크루즈 배의 경우 카드 대신 팔찌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 체크인이 끝나면 크루즈 디렉터의 방송이 들려온다.


 “지금으로부터 30분 후에 전 승객 비상안전훈련을 시작합니다. 이 훈련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이니 모두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를 비롯한 형광색 조끼를 입은 승무원들은 곳곳에 서서 승객의 카드를 확인하고 각자의 스테이션으로 안내한다. 이 훈련을 통해 승객들은 비상시 집합해야 할 각각의 장소에 미리 가보고 해당 그룹을 책임지는 크루즈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비상시 행동 수칙을 익히게 된다.



Muster Drill - 출항 전, 비상 시 안전훈련 (사진출처: 로얄캐리비안블로그)



나는 이 훈련을 할 때마다 회사에도, 승객에도 깊은 인상을 받는다. 요즘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은 적어도 이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매 크루즈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늘 하는 훈련인데도 그 어떤 선장이나 항해사, 매니저, 크루 멤버들 마저도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대충 진행하는 법이 단 한 번도 없다. 승객들이 훈련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놀라웠다. 모두가 질서를 지켜 자신의 위치로 이동하는 것은 기본이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그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서 있어야 하는 게 아주 달갑지 않을 텐데도 모두가 조용히 훈련에 귀를 기울이고 구명조끼 착용법을 유심히 지켜본다. 심지어 어떤 게스트는 프런트 데스크까지 찾아와서 “크루즈가 처음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안전하게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워요”하고 감사의 표시를 한다. 짧으면 20분, 길면 40분까지 걸리는 이 중요한 훈련이 끝나야 배는 비로소 출항할 준비를 마친다.


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모든 면에서 비교적 유연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고집불통처럼 지키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안전에 관한 사항이다. 디즈니월드에서 인턴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크루즈에서도 그렇고, 미국은 Safety, 안전에 대하여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민감하다. 무거운 물건을 안전하게 옮기는 방법에 대한 20분짜리 비디오를 시청한 다음, 모두가 그 프로그램을 교육받았다는 것을 사인하게 한 후 문서화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또한 크루즈 내에는 모든 안전문제를 전담하는 Safety officer가 있다. 모든 부서가 일주일마다 일정량의 Safety observation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곳은 기본이고 매주 정해진 매니저들이 배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안전사고유발 가능성의 부분이나 고쳐야 할 곳이 있는지 샅샅이 살핀다. 


크루즈 타고 항해하는 게 위험하거나, 위험하진 않더라도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라 전체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사건 이후로 더 많이 듣는 말들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에 대한 가능성은 크루즈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철저한 점검과 교육, 비상시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훈련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웬만한 사고는 예방할 수 있을뿐더러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악조건의 경우 미리 시스템을 통해 파악하여 그 지역을 피해서 갈 수 있는 다른 기항지로 대체하거나 기항지 자체를 취소하는 일도 적잖이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크루즈 여행을 미루고 있다면 용기를 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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