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우리는 함께 항해한다
“엄마, 오늘은 스페인이야. 여기 엄청나게 맛있는 컵케이크 집 발견했다?”
“그래 우리 딸, 아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네, 즐겁게 지내다 와”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내 행복을 위해 살았다. 어느새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타이틀은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가 되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유로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솔직히 크루즈 승무원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직급에 따라서 다르다. 프런트 데스크에 있을 때는 2000달러 미만이었고, 컨시어지의 경우 2주마다 한 번씩 받는 고정급과 매 크루즈마다 게스트에게 받는 일정량의 팁을 합치면 한 달에 3000달러 이상으로 직급에 비해 많이 받는 편이긴 하다. 다른 포지션의 경우 천차만별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돈만 보고 크루즈를 탈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난 영국 친구들은 다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돈 벌려고 여기 온 거 아니야. 런던 호텔에서 일하면 여기보다 두 배 이상 벌겠지. 그냥 크루징이 좋기도 하고 여기서는 먹고 자는 건 공짜니까 여행하면서 사람 사귀러 온 거야”
하긴 살인적인 영국의 물가를 생각하면 크루즈에서 버는 것은 런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버는 돈보다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크루즈에서의 삶 하나만을 기대하고 온 이들에게서는 어떤 여유가 느껴진다. 사실 나도 첫 컨트렉 때는 세계여행의 기쁨 때문에 “돈 안 주고 부려먹어도 난 여기서 일할 수 있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때 내 매니저는 “일 년 지난 후에도 그런 말 나오나 보자”며 웃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크루즈 승무원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은 최고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까지 버니 이런 신의 직장이 없다.
사진 : 스페인 Vigo에서의 멋진 하루
하지만 크루즈에서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짠했던 것은
모두가 나처럼 여행하기 위해서,
경험을 쌓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뒤였다.
크루 멤버들 중에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온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많다. 특히 동남아나 캐리비안 섬나라에서 온 크루 멤버들의 경우 보통 체력적으로 강도 있게 일을 하는 포지션에 많이들 배치되어 긴 시간을 고되게 일한다. 그들이 나처럼 단지 자유롭고 싶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 가족을 떠나 8-9개월의 긴 컨트렉을 하느냐? 그건 아닐 것이다. 그곳 나라의 물가나 화폐가치를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크루즈에서 일하는 게 가문의 영광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늘 말한다.
"이번 컨트렉이 마지막이야"
"이번에 집에 가면 가족과 함께 살 거야. 아이들이 크는 것도 못 보는 게 너무 속상해"
그러나 나는 다음 시즌에 그들을 또 만난다. 자식들을 사랑하는 만큼 열심히 일해야 그 나라에서 보장된 미래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에 그리움을 꾹꾹 눌러 참고 배로 돌아온다. 받은 월급을 족족 집으로 부치는 이들은 유럽의 아름다운 포트에서도 공짜 와이파이존을 찾아 계단에 앉아 가족과의 스카이프를 주로 즐긴다. 처음에 잘 몰랐을 때는 여기까지 와서 와이파이에 목숨 거나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들에게는 아들이 깨어있는 시간에 비록 화상통화이지만 얼굴이라도 한 번 보는 게 여행보다 중요할 것이 분명했다. 배 안에서는 와이파이 요금도 비쌀뿐더러 화상통화를 하기엔 터무니없이 느리니 이렇게 밖에 나왔을 때라도 실컷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것이다.
고국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야 나나 그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겠지만 그들에게서는 삶의 안쓰러운 모퉁이가 느껴진다. 그냥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었다. 크루즈에서 일한다고 하면 모두가 세계 여행, 자유로움을 먼저 궁금해하지만 그 이상의 애틋함도 있다는 것을. 아픈 아버지의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두 살짜리 아기를 떼어놓고 온 친구, 빚을 갚기 위해 온 친구,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온 친구, 하던 사업이 망해서 도망치듯이 돌아온 친구 등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