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하노이 May 07. 2023

내가 베트남에서 절대 에어팟 안 끼는 이유

베트남에 와서 모든 음악 구독을 끊어 버리다



으아아악!!!!!




엉덩이 밑으로

생전 처음 느끼는 감촉의 무언가가 들어왔다.

뒤돌아보는 순간

그게 자동차의 바퀴임을 깨달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에 깔린다는 느낌이 바로 이것이구나.

섬뜩함을 느끼며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찰나

80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기사가

뜻은 몰라도 전 세계 누가 들어도 욕임을 알 수 있는

말들로 내게 고함을 쳤다.


내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자 

지게차 같이 생긴 그 작은 차는

그대로 바퀴를 굴려 앞 공터로 달려가 주차를 했다.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가 본인의 쉼터인 듯했다.





내가 걸은 그 길은
사람이 다니는 인도(人道)였다.



 


한국이었으면 뒷목이라도 잡고

경찰을 불러 보험처리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뺑소니 같은 경우를 당하고 

욕까지 들으니 너무나도 화가 났다.

더욱이 새로 산 옷을 입은 첫날인데

베이지색 원피스는 바퀴 자국으로 

엉덩이 부분이 짓이겨져 버렸다.

세탁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늘 외국에서는 참고 또 참으라고 하셨지만,

결국 나는 인도의 가장자리 공터에 주차한 그 기사에게

"K-쌍욕"의 진수를 보여주고야 말았다.


마스크를 내리고 거친 손동작과 눈빛으로

샤우팅을 내리꽂자

이내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내 눈을 피하였다.



 

[사건이 일어난 인도(왼쪽)와 나를 밀어버린(!) 문제의 지게차(오른쪽)]



회사에 가서 이 이야기를 전하자

주변 동료들이 하나같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왜 에어팟을 끼고 다녀요?




물론 나도 안다.

베트남의 도로 사정이 보행자에게 매우 위험하고 열악한 것을.

하지만 집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기 전

아주 잠시나마 몇 분만이라도 

그전까지만 음악을 즐기려 

에어팟을 꽂고 가고 있었는데

인도를 타고 거침없이 내달리던 지게차는 

내게 몇 번 빵빵 거리다 내가 못 듣자

그냥 바퀴로 밀어버린 것이다.





하아...





한국에서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타며

늘 음악을 들었는데

베트남에 와서는 모든 음악 구독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한다는 것은,

여기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일이다.

언제 어디서고 보행자 도로로 오토바이가, 차가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랩이나 택시를 탄다고 해도

운전기사가 언제 어떻게 말을 걸지 모르고

또 하노이 시내에서의 차를 통한 이동반경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이동하며 여유 있게 무언가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꿈만 같은 얘기다.



이제는 다른 용도로 전락해 버린 

나의 에어팟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혹시라도 베트남에 여행 오실 분이 있다면

에어팟은 한국에 잠시 두고 오시는 것을 

권하는 바다.




▼ 음악감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전락해 버린 나의 에어팟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에선 선생님께 무얼 선물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