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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자 정체성 만들기

우리 매체의 고유함을 정의하자

by SUMMER

미디어 기획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는 단순하다. 소통이다. 소통은 말하는 주체와 듣는 주체를 연결하는 일이다. 이를 양적,질적으로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매체 환경, 수단, 메시지, 전략적 선택을 고려하는 것이 미디어 기획이다.

독자 찾기의 작업과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게 발신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일이다. 이는 말하는 주체를 만드는 일인데, 이 작업을 소홀히 하면 콘텐츠는 나가는데 정체성이 없고, 뭘 하는 채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건 법인격을 세우는 것처럼 그 자체로 기능하는 인격을 만드는 일이다. 한 두가지의 결정,사람에 흔들리지 않는 공동의 장소를 만든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다룰 주제와 말할 범위, 그 목소리의 톤앤매너와 몰입주제를 정하면서 정체성을 구체화한다. 작업자들에겐 우리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공동의 정신 모형을 갖게 되는 일이고, 실질적으로 일을 할 때 필요한 가이드로 이어진다.


그런데 때때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을 만나면, 미디어 기획을 ‘실무자를 지정’하는 일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우리 단체 A는 유튜브, 트위터도 하고 있고 회원가입자를 위한 이메일을 내보내고 있고 보통 K씨가 담당합니다.”

K씨가 여러 채널을 담당한다는 단순한 사실만 있을 뿐 매체로서 필요한 여러가지 정의가 비어있는 상태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매체로서 무슨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발신자 정체성을 갖기를 바라는지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을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모두 고생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만족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 표면적으로는 이것도,저것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이 부족한 K씨의 고충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K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엇을 하고, 안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자신의 결정이어도 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단체를 대표하는 채널에 올라가는 콘텐츠인데, ‘내맘대로’ 이런 말투를 써도 되는 것일까? ‘내맘대로’ 이런 주제를 올려도 되는 것일까?

이때는 주로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의사결정자가 ‘그냥 아주 맘대로 하라’고 풀어주는 경우다. 이런 결정이 때로 충주맨, 스픽 마케팅 같은 성공사례를 만들어낸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권한을 주고, 아예 감좋은 사람에게 브랜드 메신저로서의 모든 걸 맡기는 것이다. 이런 성공은 의도해서 만들어내기도 어렵고, 리스크 대응 등 변수가 있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더 최악은 의사결정자가 ‘맘대로 해보되 갖고 오라고 하고 사사건건 뒤집는 경우’다. 밖으로 나가는 콘텐츠이니 신경은 쓰이는데, 공동으로 합의한 발신자 정체성은 없고, 실무자 맘대로 하도록 두지도 못하는 비극적 상황이 발생한다. 애써서 만들어놓으면 뒤집고 또 수정하고, 그러다보니 실무자는 의욕이 떨어지고 콘텐츠는 무미건조한 공지사항, 의도와 다른 혼종이 되어버린다. 시간은 또 시간대로 흘러서 ‘겨우 이거 내보내는데 이 시간을 썼냐’는 타박을 듣기 일쑤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과는 ‘나쁜 콘텐츠’다. 결국 별로 필요도 매력도 없는 메시지가 공중에 나부끼게 된다. 듣는 쪽도 없고, 말하는 쪽의 캐릭터도 없고 콘텐츠의 쓸모도 없는 삼무의 비극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디어 운영을 하고 계시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떤 답을 원했던 것일까?


이렇게 기계처럼 답할 사람은 없겠지만, 어떻게 매체로서의 기획을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답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 단체 A는 [시청자/독자 정의1: 바빠서 일일이 챙기기 어렵지만 일상의 환경적 실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발신자 정의1: 친근하고 똑똑한 박사님]처럼 [콘텐츠 정의1: 일상 실천, 도시 생활 궁금증, 정책 변화]를 알려주는 콘텐츠를 [매체 정의1: 유튜브]를 통해 [+목표: 관여도가 낮은 쪽 - 더 넓은 범위에 확산] 하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 A는 [시청자/독자 정의2: 우리 단체에 후원을 할 정도로 관여도가 높은 분들]을 위해서도 [발신자 정의2: 꼼꼼하게 월간보고를 하는 실무자]처럼 [콘텐츠 정의2: 주요 성과, 월간 활동]을 [매체 정의2: 문자와 이메일]로 보내 [+목표: 주요 기존 관계자와 연결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 A는 [시청자/독자 정의3: 현재진행형인 여성 이슈에 관심이 높은 분들]과 [발신자 정의3: 그때그때 여성 폭력,정책,인물을 기가막히게 잘 아는 언니]처럼 [콘텐츠 정의3: 기사와 반응을 공유하고 논평]을 내며 [매체 정의 3: 트위터] 에서 [+목표: 자주 가볍게 연결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시청자/독자의 정체성이 발신자 정체성 설계와 연결되게 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그의 문제, 매체 환경을 상상하는 작업을 했다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최적의 방식으로서 발신자의 정체성을 정의해야 한다.


정치학교 반전에서 ‘매체로서의 정치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 있다. 그때 쓴 예시를 공유해본다. 수업에서 젊은 정치인이 자신의 매체- 채널을 만들고 활용할 때 고려할 독자들의 페르소나를 아래와 같이 정의해보았다.

첫번째로는 페르소나의 기본적인 배경을 포함한 정보를 정의한다. 핵심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이미 깊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누구고 앞으로 더 연결하고 싶은 - 확장하고 싶은 독자층은 누구인지 고민한다. 이 고민을 반영해 핵심 타겟 페르소나를 잡는다.


너무 많은 페르소나를 잡으면 결국 뾰족한 전략 방향성이나 실행과 연결하기 어렵다는 걸 고려한다.

관여도(Engagement)를 고려해 가닿기를 원하는 시청자/독자를 정의하는 게 좋다. 우리와 진하게 연결되어 적극적인 - 말하자면 후원,직접적인 참여, 운동을 할 사람은 누구인가. 아주 직접적인 행동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를 지켜보고, 관심갖고 지지하는 - 중도의 관여도를 가진 이들은 누구인가. 아직 매체의 목소리가 가닿는 동심원의 바깥에 있지만, 아주 가까워서 때로 목소리를 포착할 수 있는 시청자/독자는 누구인가. 그들의 배경을 고려하고, 매체와의 관계를 고려해 한줄 정의를 적는다. 이를 테면 - 이 표에서는 젊은 정치인이 스스로를 매체화할 때 독자 페르소나를 정의하는 것이므로 ‘정치 이슈’,’정당’,’SNS’ 같은 키워드들을 한줄 정의에 포함했다. 배경에 추가적인 특성을 포함했다. 미디어 소비습관, 경제 상황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독자 정의에 관한 부분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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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시청자/독자의 열망과 절망, 매체로서 제안할 수 있는 가치를 적어본다. 열망과 절망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어떤 메시지와 정보가 그들에게 가닿을 것인지, 그들이 가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으로서의 콘텐츠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안할 수 있는 가치란 말그대로 열망을 채워주고 절망을 해소해줄 방안이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상품을 판다.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은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를 위한 기획의 출발점이 여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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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가닿고 싶은 시청자/독자 모델 (= 타겟 페르소나)를 정리했다면 그와 연결해 발신자 정체성을 정의할 차례다. 발신자 정체성을 정의하는 게 이후에 콘텐츠 제작 체계를 만드는 일, 브랜드의 목소리를 가이드하는 일의 시작점이다. 아래와 같이 정치인 김새로움을 매체로서 정의해볼 수 있다.

해결책으로서 어떤 콘텐츠가 위의 시청자/독자들에게 와닿을지를 고민하고 이 매체가 다룰 주제를 고민해본다. 이 매체는 어떤 주제/방식을 선택해야 할까? 독자의 갈망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목소리 톤앤매너를 고민한다. 이러한 톤앤매너는 문서에 기록되고 사장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채널을 가꾸는 사람들의 실행 지침이자 피드백 기준이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는 게 중요한가? 연령대를 아우르는 게 중요하다면 콘텐츠가 충분히 세대를 아우르는 단어를 쓰고 있는지, 특정 문화를 좋아하는 커뮤니티의 밈이나 유행어를 괜히 쓰진 않았는지 점검한다. 중간 성과를 자주 공유하거나 응원하는 표현을 쓰고, 특정한 캠페인을 할 때 목표의 진행상황을 마일 스톤 단위로 쪼개서 공유한다. 그런 방식으로 목소리의 톤앤매너를 반영하고, 가이드한다. 발행 전 점검할 체크리스트에 이러한 항목을 포함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하는 부분은 몰입 주제다. 아래 콘텐츠 범위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나열하고 실험하기 위한 밑재료에 가깝다. 이 모든 걸 한다-라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려보는 스케치 그림 같은 것이다. 이 콘텐츠 범위를 보면서 마지막에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매체에게 ‘이 이야기만큼으 놓치지 않고 기대할 수 있다’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디어 기획이란 한 번의 시도 - 한 번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그걸 만들어내는 커다란 기계 자체를 기획하는 일이다. 세상에 흘러 넘치는 정보, 새롭게 쏟아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 매체는 어떻게 독자가 원하는 기대 수준을 ‘계속’ 충족해갈 것인가? 우리를 보면 된다고, 우리가 이 영역은 꽉 잡고 있으며, 절대 놓치지 않고 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 그걸 몰입 주제로 설정한다. 매체가 절대 놓치지 않고 전해줄 이야기. 무조건 다룰 것. 장담하고 우리가 체크해줄 영역이 있어야 한다. 그걸 시청자/독자에게 약속할 수 있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예시) 발신자 정체성 정의 | 매체로서의 정치인 - 김새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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