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에서의 실수 vs 치료에서의 실수, 무엇이 더 치명적일까?
일반 조직과 마찬가지로 병원 역시 실수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병원에서의 실수는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기에 그런 표현자체가 더 예민하고 조심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과연 대중은 진단에서의 실수와 치료에서의 실수 중 무엇에 더 엄격할까?
메이요박사의 의학부 졸업식 연설문 중에서
메이요클리닉의 창시자 윌리엄 메이요 박사는 1895년 미네소타 주립대학 의학부 졸업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진단에서 세심한 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분께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대중은 진단에서의 실수보다 치료에서의 실수에 좀 더 관대했습니다. 저는 진단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체계없이 너무 서둘러 검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매 경우마다 편견 없이 꼼꼼하고 세심하게 신체검사를 하겠다고 다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정확한 진단 결과는 보장된 것입니다.
메이요 박사는 수많은 임상경험을 통해 대중은 진단에서의 실수를 훨씬 더 치명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으니, 절대로 서둘러서 진단하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메이요 클리닉 이야기] 책에 보면 한 남성이 메이요클리닉을 경험하고 나서 쓴 편지글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메이요클리닉에 오기전에 한 외과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적어도 신문에서는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이었죠. 우리는 그를 만나기를 고대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물어보려고 질문 목록도 준비했습니다. 그 의사가 견장에 '환자우선'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아주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첫 질문을 던지자 마자 그는 마치 그 질문에 전부 답해주려면 전 세계에서 그를 보러 모여든 많은 환자들과 만날 시간을 다 뺏기고 말거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메이요 클리닉은 완전히 딴판이었죠. 메이요 클리닉에서의 '환자우선'은 그저 단순한 라벨 글귀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진짜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 그랬습니다."
이 환자는 메이요 클리닉에 오기 전 이름 있는 의료기관 4곳을 들렀지만, 그녀의 얘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하지만 메이요 클리닉에서는 간호사가 장장 45분에 걸쳐 환자의 긴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 환자를 만난 위장관내과 의사도 다시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간호사와 의사는 그 자세한 이야기를 참고해서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다양한 가능성을 추론해냈다. 이렇게 추론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의사는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의학 검사를 지시했고, 결국 수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론 내렸다. 이 환자의 입장에서 볼 때 메이요 클리닉의 환자중심 접근방법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한국의 일반적인 병원상황에서 메이요클리닉에서처럼 무려 45분동안 이야기를 들어주고 긴 시간동안 상담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사실은, 세계 1위 병원은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굉장한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처음 만난 환자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 혹시나 위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같은 환자가 우리 병원에 온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나는 통상 초진에 몇분의 시간을 쏟고 있는가?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량(생각의 양)이다. 정말 고객을 사랑하는 환자 중심의 병원이 되려면 우선은 초진 환자에게 최소한의 시간을 할당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손님이 이미 만원인 상태라면야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손님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만이라도 나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조금만 더 여유를 만들어보자. 따뜻한 목소리로 먼저 환자의 아픔에 공감을 해주고, 진찰이 끝나갈 즈음에는 꼭 더 궁금한 사항은 없는지 물어보라. 그것만 해도 당장 병원에 달리는 리뷰의 퀄리티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부터 첫 진단에 최대한 좀더 많은 시간을 할당해보자.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이는 마케팅적으로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케팅에서는 고객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MOT라 부른다. Moment Of Truth, 말그대로 '진실(실체)이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요즘의 환자들은 인터넷 광고를 보고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현란한 광고문구와 이미지를 보고 왔으니 얼마나 눈높이가 높겠는가. 우선은 초진의 시간을 최대한 넉넉히 잡아두어야 환자들과 한마디라도 더 따뜻한 소통을 시도해볼 수가 있다. 이 따뜻한 소통이 병원에서는 정말 중요한데, 다음 글에서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 '병원'이라는 곳의 독특한 고객특성과 함께 소개하겠다. 아무쪼록 '더나은 초진을 위한 충분한 시간확보'를 중점과제로 삼으시길 바라며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