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청춘은 내가 좀 쓸게! 썸머 필름을 타고!
고등학교 방송부 시절을 떠올려 보면 많은 사건들과 기억 남는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기분은 없다. 한복을 입고 학교 행사 사회를 보고, 시를 낭송하고, 점심 방송을 하고, 수능 안내 방송을 했다. 그 외에 학교 축제에서는 1~2학년 때 방송제를 참여했고 1학년 때는 각종 길거리 취재와 콩트를, 2학년 때는 학생들의 인터뷰와 학생과 학교에 대한 연극을 했다. 연극의 극본은 내가 썼고, 정말 급하게 쓰는 바람에 지금은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고뇌하는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나는 나름 그 그룹의 중심에 있었고 방송부의 대표로 나서 합창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 동창회의 송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부를 겉도는 부원이었고, 중심에 있지만 묘하게 중앙을 벗어나 있었다. 추억은 있지만 열정은 없었다랄까. 부원들과의 우정도 깊이 나누지 않았고, 오직 그곳에서 매시간 LP를 틀고 교실이 아닌 유리 너머에 앉아 점심 방송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썸머 필름을 타고!'란 영화를 봤다. 영화부 학생들의 우정과 사랑, 꿈에 관한 여름날에 어울리는 빛나고 소중한, 작고 어여쁜 영화였다. '스윙걸즈' 혹은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 그 어딘가 사이에 있을 것 같았던 영화는 묘하게 마법 소녀물인 세일러문을 닮았다. "무사의 청춘은 사랑한단 말 밖에 할 수 없잖아!" 마지막 대사에서도 사랑과 정의를 지키는 미소녀 세일러문, 혹은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라고 말하는 웨딩피치가 떠오른다. 열정 넘치는 소녀는 꿈과 사랑을 위해 미래와 싸운다. B급 SF적 상상이 더해진 이 영화는 공식적인 여름의 마지막인 8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환상적이게 어울리는 영화였다. 열정! 열정! 청춘! 그리고 첫사랑!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유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존재하길 거부했고 밀어냈던 것 같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내가 오롯하게 부릴 수 있는 사치는 부서활동과 독서, 음악 감상 정도였다. 부서활동을 하면 학생회비를 내지 않아도 됐고,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면 되고, 음악은 라디오와 방송부에 있는 LP, CD, Tape로 충분했다. 방송부원이면 매달 1~2개의 CD나 Tape를 부비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언니네 이발관 울면서 달리기 앨범과, 그리고 서태지의 지지하에 데뷔한 휘성의 데뷔 1집을 샀다. 이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문화적이고도 고급의 사치였다.
그 시절 내 꿈은 없었다. 태어나서 19살까지 누군가 장래희망이라던가 목표를 물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변신 소녀. 마법소녀. 타고난 오타쿠였던 나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꿈이 있었는데 언젠가 계시를 받고 마법소녀가 되는 것이었다. 만화 속 마법소녀는 오직 10대만 할 수 있다. 그래서 19살이 끝나던 12월 마지막 밤 나는 굉장히 우울해했다. 나의 유년이 끝나서가 아니라 아무런 계시를 받지 못해서 슬펐다. 10대의 나는 참 미성숙한 인간 그 자체였는데, 감정에도 솔직하지 못하고 남의 감정도 공감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서툰 게 아니라 아예 모르는 무지의 상태. 그 반동인지 지금은 너무나도 감성적이고 일희일비하는 10대같이 서툰 어른이 된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를 왜? 주말에 같이 도서관 갈 때 입을 사복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나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무관심, 무감각의 상태였다. 버스에서 늘 나를 기다리던 남자아이에게 "왜 나를 기다려?"라고 물어본 건 관심, 혹은 거부나 분노가 아니었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바탕이 된 질문이었다.
아... 그래서 나는 마법 소녀가 될 수 없었나 보다. 사랑을 몰랐으니까. 마법소녀는 사랑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데 나는 그 중요한 사랑을 몰랐다. 이런이런. 나는 무수한 인간 변수 사이에서 사랑이란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은데 이미 마법소녀가 되긴 늦은 나이다.
내 학창 시절 BGM은 내 방송의 시그널 음악이었던 'You call it love'였는데,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화 속 소피 마르소가 읽었던 몰리에르의 희극 <인간 혐오자, Le Misanthrope> 그 자체다.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그게 학창 시절의 나였다.
이번 여름의 키워드는 불안과 사랑, 그리고 애도다. 나는 100세까진 살터이니 어찌 3분의 1 정도를 살았다. 1년도 분기별로 평가를 하고 목표를 세우는데 인생의 3분의 1을 살았으니 한번쯤 내 인생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무수한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나는 위 3개의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이겨내고 온몸으로 맞이하고 느끼려고 노력 중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식사에서 프로이트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인간의 감정은 태어남 자체가 고통이자 트라우마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트라우마와 고통을 이기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은 어떠한 감정이든, 어떠한 인간관계든 애도의 시간을 갖자고 결론을 지었다. 우리는 롤랑 바르트는 아니지만 지나간 사랑들과 인연들을 반추하며 위안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애도와 불안에 대해서는 꽤 생각을 많이 하고 정리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고 남이 주는 친절과 호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그 타이밍도 매번 손에서 놓친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이런 키워드에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했다. 조금 늦었지만 이번 가을, 겨울은 10대처럼 매일을 온전히 살아내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
이래저래 잡다한 이야기가 길었다. 어느덧 9월이 됐고 날씨는 차가워졌다.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썸머 필름을 타고!' 속 주인공들 맨발, 블루하와이, 킥보드!
"이번 여름에 너희들의 청춘은 내가 좀 쓸게" 아니 남은 가을 겨울도 내가 좀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