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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un 25. 2016

3명의 친구, 그리고 우타다히카루의 first love

도쿄, 3개의 이야기 - 세 번째: 다른 나라에서



소음공해.

아마도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여자의 친구인듯한 여인의 안부가 들린다.

아마도 파란 스니커즈를 신은 남자의 직장동료인듯한 남자가 어떻게 생겼을지 허공에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녀의 가족인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마도 그의 후배 이야기를,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남의 삶을 듣고 있다.

원치 않게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안부, 그 속에 잊혀지는 내 머릿속의 생각... 그리고,

"어, 지금 뭐하려고 했었지?"





방금까지 내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무엇을 생각했었는지...

무엇은 그렇게 낯선 소음 속에 뒤섞여 흩어져가고,  어느덧 나는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의 삶 속에 깊이 파묻혀 머리와 어깨가 짓눌린다. 이 무게를 어찌 이겨내야 할까? 이 낯 섬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질 때면 나는 언제나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게 아닐까 싶다.





 

언어가 다른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낯설지만 그 많던 소음들이 귓가가 아닌 머리카락을 타고 위로, 옆으로, 아래로 흐르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만성적인 두통이 겉히고 달콤하게, 찐득하게, 오직 나만의 소리가 고막을 휘감는다. 나는 이게 어찌나 신이 나던지 한 번은 통신이 연결되지도 않은 무용지물의 핸드폰을 붙잡고 한국말로 신나게 하고 싶은 말을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던 적도 있다.


도쿄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오늘 있었던 일,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 여행에서 꼭 일어났으면 하는 것들을 소망하며 시구처럼 낭독하고, 노래 가사처럼 흥얼거렸다. 성인이 된 이후 이토록 터무니없는 소원을 스스로에게 크게 내뱉으며 이루어 달라고 전화통에 매달리는 촌극 같은 상황이 몇 번이나 있을까?







왜 하필 도쿄였을까?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같은 문화권의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사는 곳. 겨우 1~2시간 남짓한 비행거리, 인구밀도가 매우 높아 서울과 비슷한 듯 다른 그 도시.

몇 번의 방문 속에서 늘 비슷한걸 먹고, 비슷한걸 마시고, 비슷한 레퍼토리 속에서 "도쿄에 왔네!"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구름 낀 오후,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언제나 "도쿄에 가고 싶다."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말갛게 온몸으로 베어드는 익숙한 듯 낯선 풍경과 둥글고 청량한 발음의 언어들이 조각조각 나뒹구는 도시 도쿄. 나는 그날도 힘겨운 남의 무게를 벗어나고자 도쿄로 향했다. 그리곤 특별하게도, 이번 여행에선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8년 전, 일본도 아닌 영국 런던에서 만났던 야기, 니코, 켄조.


야기는 IT회사 직장인이 돼 3살 연상의 연인과 동거 중, 디자이너인 니코는 9살 많은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지만 곧 영국으로 다시 워킹을 떠난다고 했다. 은행원 켄조는 12살 어린 여자친구 카에데코과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얼마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사진을 보내줬다.)


분명 우리는 런던에서 처음 만났고, 도쿄에서의 만남은 처음이었거늘, 왜 우리의 첫 만남이 도쿄에서 시작된 것만 같은지, 8년 만의 도쿄에서의 만남이, 이 도시에서의 만남이 낯설지 않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4명 모두 30대가 된 지금, 8년 전 우리들의 부풀었던 꿈은 조금 많이 퇴색됐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도피처처럼 한때 머물렀던 런던에서의 우리의 삶을 포장하며 그때가 얼마나 특별하고 신기했는지 수다를 떨었다.

꿈 많고 싱싱했던 어린 우리는 어느덧 어른이 됐고, 현실과 타협하며 살고 있네, 하지만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잖아?


그래도 이러한 반갑고도 특별한 재회가 아직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조금의 특별함이란 게 남아있음을 발견해 주는 것만 같아 기뻐했다. 우린 여기에 있지만 우리의 대화는 과거의 거기에 있고, 우리의 꿈도 여전히 거기에 있고, 여기에 있는 우리는 그저 증발해버린 그때를 그리워만 하고... 아름다운 과거를 추억하는 건 무척이나 즐겁지만 한편으론 마음을 갑갑하게 한다.





"우리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 멀리서 비행기 타고 찾아오는 친구도 있고, 그 친구 술 한잔 사줄 수 있는 직장도 있고, 집에 가면 기다리는 애인도 있고."

무거운 분위기에 노크를 하듯 조심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오래전 런던 최고의 익살꾼이었던 야기는 그때를 잊지 않았다는 듯 장난스레 문장을 구사한다. 우린 그에 응답하듯 손에 쥐어진 맥주잔을 부딫이며 청명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소복이 쌓여가는 이야기들과 조금씩 안개처럼 젖어드는 비의 도시를 향한 그리움, 아련히 밀려오는 어린 꿈의 편린과 여전히 조금 무거운 마음. 그리고 오늘 밤이 끝나감의 아쉬움이 우리의 술잔을 끊임없이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난 너무 좋아. 여긴 도쿄잖아. 도쿄랑 서울은 그리 멀지도 않은데, 내 삶이 새로운 색의 필터를 입고 있는 것 같아. 거울 속 내 눈빛도, 웃음도, 말투도, 생각도...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분위기가 돌아서... 마치 엄청나게 마음에 드는 새 옷을 산 것처럼 기분이 좋아."


"그냥 내가 잘 모르는 언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새로운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언제든지 또 와, 새로운 옷을 입고 싶거든."




나, 켄조, 니코, 야기 :)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일본 노래는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였다. <마녀의 조건>이란 일본 드라마의 주제곡이자 일본 대표 디바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곡. 나는 그날 밤 'first love'를 수없이 반복해 듣고 흥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그 곡은 잊혀진 시간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울고 싶게 만드는 거창한 추억 속의 노래는 아니지만, 그냥... 아주 오래전 도쿄란 도시를 그리며 떠올렸던 첫 번째 곡이었던 것 같다. 이제 이 곡은 몸과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도쿄행 티켓을 구매하라는 곡이 되겠지? 아련하고 슬픈 첫사랑의 곡이 이런 식으로 기억돼도 될까 싶다마는...




당신과의 마지막 키스는 담배의 향기가 났지요

씁쓸해서 애달픈 향기

내일 이맘때에는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누구를 생각할런지요


You are always gonna be my love

언젠가 누군가와 또 사랑에 빠진다 해도

I'll remember to love you taught me how

You are always gonna be my one

지금은 아직 슬픈  Love song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First love - Utada hikaru



10년지기 친구 Heather와 Ray 여행잡문

따로 방문한 도시, 똑같은 장소, 각각의 기록


글: HEATEHR

사진: 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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