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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22. 2018

이별 후유증 -2

헤어짐이란 나에게서 너에게서 서로가 죽는 것


1. 우리의 사랑의 형태는 닳고 닳아 둥글어진 원.

이제 모나게 부딪히고 긁힐 필요도 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2. 편의점에 들려 오렌지 주스 1.5리터를 샀다. 그리고 그 묵직한 노란 페트병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곤 길을 걷는다. 차갑고도 새콤한 주스가 찰랑이며 팔뚝 안의 살을 비집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다지 크지 않은 사거리를 지나 늦은 시간이라 드문드문 조용히 지나가는 차들을 본다. 잠시 후 커다란 나무 두 그루 사이로 신한은행이 보인다. 나는 자연스레 낮은 대리석 담벼락 아래 벤치에 걸터앉아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며 끝이 없을 것 같은 잎사귀의 수를 세어본다. 그 잎사귀 사이사이로 부는 바람에 한숨을 몰래 숨겨 실어 보낸다. 하늘은 흐리고 달이 숨고 눈물 한 방울이 시야를 흐렸다가 눈동자 뒤로 다시 숨는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간다. 이별을 했다. 나는 슬프거나 아프고 힘든 날 오렌지 주스를 산다.


3. 어린 나는 정말 작은 원룸에서 살았다. 그 시절 나는 이별 후 펑펑 울다 잠드는 날마다 이 방이 모두 물로 가득 차 온몸이 두둥실 떠오르다 눈물 속에 익사하는 꿈을 꾸곤 했다. 어느덧 그때보단 조금 커진 콘크리트 건물 안에 방과 거실을 달리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메마른 나이의 벽으로 인해 눈물조차 나지 않는, 사방으로 넓어지기만 한 말라버린 콘크리트에 갇혀 아무런 기억도 추억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내 옆에 죽어버린 너를 두고 안고 메말라버린 벽을 바라본다.

눈물조차 나지 않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우리의 첫 만남을, 그리고 차갑게 식어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너의 마지막 잔상을 어루만진다. 너는 파랗고 하얗고 차가운 피부로 나를 슬프게 한다. 헤어짐이란 나에게서 너에게서 서로가 죽는 것이다.


4. 이별을 벗어나고자 철 지난 '샐러드 기념일' 같은 책을 꺼내 읽는다.

반짝반짝 즐거운 기분이 솟아날 거라고 말하던 한 때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하지만 작가 다와라마치는 너무 먼 곳에 있고 거기서 말하는 반짝이는 기분은 일본에서부터 하늘을 날아오다 어느덧 은하수와 뒤엉켜 흩어져버렸나 보다.


5. 사랑이 이렇게 힘들고 아픈 거였나, 이별이 구질구질하고 숨넘어갈 듯 슬프고 죽을 거 같은 것이었나.

연애의 흔적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몇십 리터의 하얀 봉투 안에 우리의 모든 추억이 가둬진다. 이건 어디론가 실려가 까맣게 소각이 되겠지. 그렇게 잿더미가 돼 사라지겠지.


6. 이별한 순간들을 되새김 질 할 때면 늘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아픈 손가락이었길 바란다.' 문득 지나가다 익숙한 길을 지날 때면, 특정한 지하철 역에서 혹은 길에서 흐르는 음악을 듣고 나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인상 깊은 연애였을까?

그간의 역사를 곱씹어보니 첫사랑이었던 그 아이에게 나는 그다지 기억에 남는 여자 친구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때 너와 나는 너무 어렸고 사랑의 방법을 몰랐고, 특히나 나는 첫 연애라는 것에 취해 나 혼자만 추는 춤을 췄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 평범한 어느 날, 그 애가 평범했던 나와 그 날들을 기억해주길 바라본다.


7. 이별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오늘도 잠들지 못하고 NASA LIVE - earth from space를 켜본다. 가끔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날 간헐적으로 이 방송을 유튜브에서 검색해 태양이 지고 떠오르는 모습을 본다. 작고 큰 위성들이 우주를 떠돌고 파랗고 하얀 지구가 조금씩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어느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8.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개의 위성이 그려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죠. 또한 마음을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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