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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Mar 31. 2020

코로나, 한편으로는 고마워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사람을 빗대어 집순이라고 부른다. 내 주위에도 집순이가 여럿 있는데 간혹 만나자고 하면 대답은 오직 하나다. "귀찮아..."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고,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도 요즘은 코로나가 무서워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고, 주말에도 웬만하면 집에 있는다. 집에 우두커니 혼자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라님들이 당부하신 '사회적 거리두기'는 꼭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순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밖순이였다. 내가 밖순이었던 이유는 딱 한 가지! 집이 싫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나는 일 때문에 본가가 있는 대전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다. 작은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혼자 지내게 되니 너무 외로웠고 집이 좁다 보니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난 항상 밖으로만 나돌았다. 매일 밤늦은 시간에 귀가했고, 주말에는 종일 외출을 하거나 심할 때는 2~3일 동안 외박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리 집이 싫어도 코로나는 무서웠나 보다. 어느 순간 외출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집에서 밥 먹고, 일하고, 놀아야지...!' 라고 다짐했던 나는 막상 집을 둘러보니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밖에서 모든 걸 해결했기 때문에 집에선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를 하려고 하면 조리기구가 없고 일을 하려 해도 노트북 놓을 책상, 앉을 의자조차도 없었다.


난 그때 주변 친구들이 급하게 사야 할 물건이 있을 때 쿠팡 새벽 배송을 애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항상 밖에서 끼니를 때우던 나는 쿠팡으로 음식 재료와 조리기구를 주문했다. 그리고 편하게 앉아 작업할 수 있게 의자도 구입했다. 그렇게 난 한 달여 동안 우리집의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우고 불편한 부분도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러다 보니 삭막하고 썰렁하기만 했던 내 자취방은 어느새 나름 아늑한 보금자리로 변해 있었다. 특히 집에선 뭘 해야 할지 몰라 항상 멍만 때리고 있던 나는 그동안 사놓고 쌓아두기만 했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말로만 듣던 홈트까지 실천하며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이렇듯 코로나는 밖으로만 돌던 나에게 집이란 공간을 돌아보고,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리고 집이란 공간이 나에게 편안함과 아늑함도 줄 수 있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 뿐만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들어보면 어떤 사람은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하지 않게 되어 카드값이 줄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만 식사를 하게 돼서 요리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는 점점 늘고 있고 경제적 타격 역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고, 우리는 빨리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외출을 자제하고 나갈 땐 마스크를 쓰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만큼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는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건 어떨까?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나만의 식사,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미세먼지 없는 청량한 하늘을 이때라도 마음껏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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