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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이로운 Apr 01. 2020

쉿! 화장 안 한 거 모른 척 해주세요

유튜브를 하다보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생각지 못한 곳으로 이끌어줄 때가 있다. 추천해주는 영상을 하나씩 클릭하다 보면 평소 1도 관심 없었던 분야를 보게 되고 '왜 나는 이 영상을 보고 있지?'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최근에도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다가, 어찌하다 보니 탈코르셋을 한 페미니스트 영상까지 보게 되었다.


해당 영상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짧게 숏커트를 한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자신이 탈코르셋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평소 페미니즘이나 탈코르셋에 대해 1도 관심없던 나지만 저렇게 머리를 짧게 하고 화장을 안하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월급 받는 즉시 옷을 사고 6개월마다 헤어스타일을 바꿔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나 역시 귀차니즘을 느끼는 사람인지라 가끔은 꾸미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실제로 진짜 만사가 귀찮은 날에는 선크림 정도만 바르고 외출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꼭 한 마디씩 듣는다.


 "오늘 쌩얼이네?"


상대방은 아무 의도 없이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 말을 들으면 '화장 좀 하고 올 걸 그랬나?' 괜히 위축이 되고 내가 게을러보이진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내가 오바해서 생각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맨 얼굴로 출근을 할 때면 사장님은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혼을 냈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온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내 외모를 비교하곤 했다. 남사친이나 선배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난 화장에 서툴러서 선크림과 립밤만 바르고 다닐 때가 많았는데 일부 남자들은 내 얼굴이 ‘화장 하면 예쁠 얼굴’ 이라며 좀 꾸미고 다니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취직을 해서도 화장에 대한 지적은 이어졌다. 우리팀 팀장님은 가끔 내가 화장을 안하고 출근하면 대놓고 화장 좀 하고 다니라고 말했었다. 지는 눈썹 정리는 커녕, 콧털 정리도 안했으면서 말이다.


화장... 물론 하면 예쁘다. 예쁜 거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매일 화장을 하는 건 피부에 그리 좋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굉장한 부지런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완벽한 피부 표현을 위해 토너를 묻힌 화장솜으로 피부결을 잘 닦아내고 에센스-로션-수분크림으로 보습을 탄탄히 채워준 후에 선크림-베이스-파운데이션까지 발라야 하는데 이 작업은 축구경기로 치면 겨우 전반전이 끝난 것일 뿐. 아이브로우, 아이라인, 마스카라, 쉐도우, 볼터치, 쉐딩 등등 색조화장까지 하면 화장 하는 데만 거의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게 다반사이다.


그냥 제발.. 화장을 하든 말든 신경을 좀 꺼주면 안될까? 화장을 하면 했구나, 안 했으면 안 했구나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해주면 안될까? 화장 안 하니 피곤해보인다, 아파 보인다 이런 개소리도 안했으면 좋겠다. 악의적인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고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곤하거나, 피부가 뒤집어져서 화장을 안 한 건데 그걸 설명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냥 화장에 대해 말을 꺼내지 말기로 하자!


난 화장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면서 내일은 맨얼굴로 출근해야겠다고 방금 다짐했다. (실은 귀찮...) 만일 누군가 나에게 화장에 대해 한 소리 하면 난 자신있게  말할 거다!


"전 쌩얼에 자신있거든요"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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