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e day(밸런타인데이)
듣기만 해도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단어가 아닐까 싶다. 1년에 딱 한 번 뿐이라 더욱 의미 있고 기다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짝사랑 중인 여성들은 이 날을 통해 고백을 할지 말지 수백 번 수천 번을 망설일 테고 연인이 있는 여성들은 어떻게 하면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은 초콜릿을 남자친구에게 선물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고, 또 귀찮은 것도 사실이지만 밸런타인데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설렘을 가져다준다.
밸런타인데이가 시작된 건 로마시대부터라고 한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군사력 향상을 위해 병사들이 결혼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마 사랑에 눈이 멀어 나라 지키는 일에 소홀했던 병사가 많아 황제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 병사들은 성 발렌티노 주교의 도움으로 황제 몰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병사들이 결혼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성 발렌타인 주교는 결국 처형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주교의 죽음에 슬퍼하며 그가 처형당한 2월 14일을 성 발렌티노 축일, 즉 밸런타인데이로 지정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밸런타인데이의 의미는 변질되었고 오늘날의 밸런타인데이는 연인들을 위한 하나의 기념일이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밸런타인데이는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남녀 구분 없이 사랑하는 이성에게 선물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밸런타인데이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다. 왜 많고 많은 선물 중에 왜 하필 초콜릿을 주는 걸까? 그 이유는 1960년대 일본의 한 제과업체에서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초콜릿을 통한 여성들이 사랑고백 캠페인을 펼친 데서 비롯되었다. 해당 제과업체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 밸런타인데이에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라는 마케팅을 펼쳤고 그 이후 일본 내에서는 밸런타인데이 때 여성들이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문화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우리나라에 전해져 이제 매년 2월 14일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 외에 또 다른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 전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죄로 체포돼 감옥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도 이토 히로부미가 자행한 명성황후 시해, 고종황제 강제 폐위, 조선인 학살 등과 같은 무자비한 죄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자신을 살인자가 아닌 전쟁 포로로 취급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일본은 아직까지도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후손으로서 안중근 의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서 건너온 2월14일의 밸런타인데이 문화는 받아들이면서도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110년 전 2월 14일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 없고 역사는 다시 되풀이되는 것이라 했다. 일제 치하를 벗어난 지 어느덧 70년이 넘었고 일본과 우리나라는 우호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게 맞다. 하지만 비굴하고 비통했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2월 14일을 ‘안중근의 날’로 지정하면 어떨까?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초콜릿을 먹으며 안중근 의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그저 잠깐만이라도 독립을 위해 헌신한 위인을 애도한다면 치욕스러운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