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단시간에 큰 목표를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일 년에 책 100권 읽기, 세 달 안에 토익점수 700점 이상으로 올리기, 6개월 안에 천만 원 모으기 등등 이루려는 목표도 가지각색이다. 물론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우리는 늘 배워왔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말은 이렇게 해도 어느 시점까지, 체중을 몇 키로 감량하리라 밥 먹듯 다짐하니 남들에게 뭐라고 할 처지도 못된다. 그런데도 내가 서두에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어떤 음악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클로드 드뷔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그를 소개할 때 '인상주의'라는 말이 꼭 붙어서 대체 그 말이 뭘 의미하는 걸까 찾아봤더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대 예술운동의 한 갈래'라고 한다. 이해가 될 듯 되지 않는 이 느낌적인 느낌... 일단 넘어가자!
드뷔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왕성하게 활동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같은 인물보다 최소 한두 세기 뒤에 활동한, 나름 최근의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계는 그에 대해 이색적인 기법과 과감한 시도로 현대음악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하는데 사실 나 같은 클래식 문외한이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저 좋기만 할 뿐 이색적인 기법이 들어가 있는지, 과감한 시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좋을 뿐이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뷔시 곡은 <달빛>이다.
이 곡을 처음 듣게 된 건 2018년도로 드뷔시가 서거한 지 100주기가 되는 해였다. 당시 대전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음악제에서도 드뷔시를 기리는 무대를 기획했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가들이 예술의 전당에서 헌정무대를 펼쳤다. 나는 음악제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 작가로 있던 터라 우연히 <달빛>을 듣게 되었는데 도입 초기,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을 듣자마자 그간의 업무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97_VJve7UVc
그 이후로도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나 왠지 감성에 잠기고 싶은 날 <달빛>을 들었는데 어두운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그 곡을 듣고 있노라면 머릿속에서 다양한 상상이 펼쳐진다. 모두 '달'과 관련된 것들이다. 달을 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잔잔한 호숫가를 비추는 달빛, 훤한 보름달을 조명삼아 숲을 걷는 누군가의 모습 등등... 아마 드뷔시도 <달빛>을 작곡하며 수만 가지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달빛을 들으며 별의별 장면이 다 떠오르는 게 아닐까?
사실 글과 음악이란 분야는 엄연히 다르지만 같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엄청나고 위대한 곡을 쓴 드뷔시가 부럽기도 했다. 난 언제 <달빛>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마 드뷔시는 천재일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서야 <달빛> 같은 곡을 쓴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음악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곡 하나를 뚝딱 완성해내는 장면을 많이 봐와서인지 드뷔시 역시 그렇게 곡을 쓰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하지만 난 아주 나중에서야 드뷔시가 <달빛>을 쓰는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빛>은 드뷔시가 쓴 <베르가스크 모음곡> 중 제3곡에 해당되는데 1890년에 이미 완성했다가 드뷔시가 여려 차례 수정을 거치고 1905년에서야 발표가 되었다고 한다. 5분 30초 남짓한 곡을 쓰는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다니.. 물론 중간중간 다른 곡을 작곡하긴 했겠지만 한 노래에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을 쏟는다는 건 제 아무리 뛰어난 작곡가라도 수많은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난 <달빛>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후, 그동안 내가 너무 조바심을 내며 살진 않았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쓸 때도 단 몇 시간 만에 완성하려 하고 그 안에 완성하지 못하면 아직 글을 잘 쓰려면 한참 멀었다느니, 재능이 없다느니 나 자신을 비난했다. 운동을 할 때도 단시간에 체력이 좋아지고 살이 빠지길 원했고, 중요한 시험을 볼 때도 한 번에 합격하길 바랐다.
우리말에도 첫 술에 배부 룰 순 없다고 하는데 난 왜 늘 첫 술에 배부르려고 했던 걸까? 물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단시간에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욕심을 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는 자칫 숨을 고르다간 노력을 하지 않는다느니, 게으르다니, 욕심이 없다느니 별의별 소리를 다 듣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조바심을 내는 걸지도 모른다.
그냥 우리 다 같이 천천히 가면 안될까?
드뷔시도 15년이나 걸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