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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Aug 15. 2023

#5. 트롬쇠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친 오로라

행운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일지도...

2022년 12월 26일 월요일


오로라를 찾아다닌 지 10년 만에 진짜 오로라를 만났다. 트롬쇠 도심 한복판에서! 


카메라만 챙겨 가볍게 호텔 밖으로 나왔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던 오슬로와는 달리 트롬쇠는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고 내가 도착했을 때보다 하늘이 더 맑아졌다. 오늘은 오로라 지수도 높은 편이어서 운이 좋으면 투어 가서 오로라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 오로라 투어 집결지인 레디슨 호텔까지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길 찾기 능력이 형편없는 나는 이따가 헤매지 않기 위해 우선 미리 가보자라는 생각에 레디슨 호텔을 향해 걸었다. 

트롬쇠는 중심지에 호텔과 상점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길치인 나도 헤매지 않고 레디슨 호텔을 쉽게 찾았고 호텔 앞에 항구가 있길래 주변을 걷고 있는데 하늘에서 스멀스멀 뭔가 빛의 기운이 느껴졌다. 

항구 쪽은 인공적인 조명이 가득한 밝은 곳이라 처음에는 구름이나 연기인가 싶긴 했는데 구름이라기엔 너무 빨랐고 연기라기에는 푸른 기운이 있었다. 

설마 진짜 오로라인가? 오로라가 지수가 강하면 눈으로도 보인다더니 와 진짜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하늘에 내게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장 굴뚝이라도 있는 것처럼 갑자기 푸른 연기가 강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는 듯 순식간에 하늘에는 강하고 심지어 움직이는 커튼처럼 펄럭이는 오로라가 나타났다. 

오로라 지수가 강하면 푸른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보인다고 하던데 테두리에 붉은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흩날리는 강한 오로라가 쉬지 않고 계속 하늘에서 움직였다. 

하늘이 워낙 맑고 오로라가 강력하다 보니 이곳이 빛이 가득한 도심이라는 것도, 내가 가진 카메라의 성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도, 사진을 찍는 내가 전문지식 따윈 일도 없고 그저 셔터만 누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일반 사진을 찍듯 셔터만 눌러도 바로 오로라가 선명하게 찍혀 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인공적인 빛이 하나도 없는 산속 혹은 외딴곳에 찾아가서 카메라 장노출로 찍어야 겨우 푸른 기운이 찍혀 나오는 게 다였다) 

오로라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트롬쇠의 하늘을 종횡무진 움직였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봤지? 사진으로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니까? 하고 나에게 자신의 실체를 보란 듯이 보여주는 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갔던 어떤 오로라 투어에서도 이 정도로 선명한 오로라는 본 적이 없었다. 

오로라를 본 순간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행운아였다. 

왜 난 돈 주고 오로라 투어를 예약했지? 안 가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장관이었다. 

사진에 담기는 쨍한 네온색이라기보다 실제 눈으로 봤을 때는 탁한 피스타치오 색에 가까웠다. 그리고 색도 인상적이지만 생명체처럼 하늘을 종횡무진 움직이는 게 더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근 10년 간 내 여행의 테마는 ‘오로라’였다. 

계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오로라’를 보겠다고 지난 10년 간 겨울 나라들을 여행했다. 오로라를 못 본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제대로 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늘 오로라를 본 건 내 카메라였고 그 빛을 담아낸 것 역시 내 카메라였다. 

나의 눈은 그저 희미한 흔적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오로라는 원래 이런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내가 보고 겪은 것이 아니면 잘 믿지 않지 않기에 이번 여행에서까지 카메라에 담기는 오로라만 봤다면 나의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10년 간 돈을 내고 갔던 오로라 투어에서는 한 번도 진짜 오로라를 본 적이 없는데 트롬쇠에 와서 우연히 산책하다가 진짜 오로라를 만났다. 

신비하다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느껴진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진짜 있구나...

비단 오로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걸 잘 믿지 않는 나에게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10년간의 시도를 보상받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헛물을 켜고 다닌 건 아니었구나, 진짜 있었구나 뭐 이런 기분. 나의 몇 년치 행운을 다 몰아 쓴 평생에 남을 순간이었다.


행운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일지도...


이미 정말 거대한 오로라를 실컷 봐서인지 나는 오로라 투어를 가기 전에 이미 만족했고 아이러니하게 돈을 내고 간 오로라 투어에서는 지금까지 그 어떤 투어보다 더 오로라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사진으로 찍힐 만한 혹은 그래도 사진은 찍으려고 시도할만한 오로라는 봤었는데(장 노출로 사진을 찍으면 찍힐 정도) 이번에는 정말 희미한 선 몇 개정도만 봤을 뿐이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태우고 트롬쇠의 구석구석 빛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오로라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후였다.

도심에서는 정말 손꼽히게 거대한 심지어 춤추는 오로라까지 봤지만 오히려 오로라를 찾아 떠난 곳에서는 희미한 흔적도 볼 수 없다니... 나는 기다림과 추위에 지쳐 점점 버스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밖에서 있을 일이 별로 없어서 인지 진심으로 너무 추웠다. 그리고 이미 거대한 오로라를 본 상태라 예전처럼 한줄기 희미한 흔적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우리는 부풀었다가 푸슈슉 꺼져버린 풍선처럼 지쳐서 다시 트롬쇠로 돌아왔다. 

오로라 투어 비용이 거의 20만 원에 가까웠지만 나는 이미 트롬쇠에서 오로라를 본 상태였기에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서 아까 찍은 오로라 사진과 영상을 다시 봤는데 내가 직접 보고 찍은 것임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파랑새는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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