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잔해만 남아있는 곳
자전거 타고 이니시모어 섬 투어
아침 8시, 조식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손님은 나뿐이었다.
프렌치프레스 커피, 잘 구워진 두툼한 베이컨, 보슬보슬한 해시 브라운,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까지...
아일랜드 B&B 조식에 감탄하며 아침 한 상을 느긋하게 즐기고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니시모어 섬을 관광하는 방법은 마차 투어, 미니버스, 자전거 투어가 있는데 자유롭고 한적하게 섬을 둘러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대여해 둘러보기로 했다.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렌트하고 정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이니시모어 섬의 대표 관광지인 던 앵거스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몇 번 밟지도 않았는데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 가빠오고 갈증이 났다.
나름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간 몸 관리를 안 한 결과를 여실히 체감하며 있는 힘을 쥐어짜 페달을 밟아나갔다.
어제 도착했을 때부터 사람이 많이 살거나 관광지로서 잘 개발된 곳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섬을 둘러볼수록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풍경이 계속 펼쳐져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곳 같았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가버렸고, 그들이 남긴 잔해만이 섬 안에 남아 있는 곳.
‘이니셰린의 밴시’ 속 풍경은 쓸쓸했지만 단조로운 평화로움이 느껴졌는데, 실제 이니시모어 섬의 풍경은 평화롭다기보다는 황량함에 더 가까웠다.
던 앵거스를 향한 험난한 여정
구글 지도가 갈수록 도로가 아닌 좁은 언덕길로 안내하더니, 그 길마저 돌담에 막혀 뚝 끊어지고 말았다.
계속 직진하라고 안내하는데, 직진하려면 둘러싸인 돌무더기를 넘어가야 하는 상태였다.
일단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등산을 하는 것 마냥 계단식으로 쌓인 돌담을 올라가 봤다. 방향이라도 맞는지 확인하려고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계속 풀숲과 돌담을 넘어갔는데, 아무리 넘어가도 제대로 된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이나 소가 되지 않고서야 도저히 오늘 안에 이 언덕들을 넘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넘어온 곳이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 아닌지, 주변에는 관광객은커녕 두 발로 움직이는 생명체는 나 하나뿐에 없었다.
나를 찾으러 와 줄 리 하나 없는 이곳에서 답도 없이 남겨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걸음을 되돌려 힘겹게 올라온 돌담들을 다시 내려가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섬이라고 해도 이렇게 길도 없는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둘 리는 없는데...
챙겨갔던 가이드 북을 펼쳐 확인해 보니 내가 갔다 온 곳은 던 앵거스가 아니라, 이니시모어 섬 중앙에 있는 ‘던 에클라’라는 요새였다.
애초에 요새란 누군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둔 곳이니 당연히 가기 편할 리가 있나...
나는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적을 침략하러 온 병사처럼 무식하게 요새를 향해 돌진했던 것이었다.
던 앵거스에 가지 못해도 좋으니 큰길을 따라 섬이나 한 바퀴 돌자는 생각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돌아갔다. 이제야 제대로 길을 찾아왔는지 관광객들이 탄 마차와 투어 버스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토록 찾아 헤맸던 던 앵거스로 가는 길이 나왔다.
오후 4시 30분이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 곳
그토록 하루 종일 찾아 헤맸던 던 앵거스는 절벽 끝에 자리 잡은 요새였다.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라 말 그대로 절벽 외엔 어떤 지형지물도 없어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를 정통으로 맞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 방문한 날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어서, 힘겹게 찾아 헤맨 보람도 없이 휩쓸려 날아가기 전에 서둘러 내려왔다.
이 섬의 유일한 관광지였는지 던 앵거스 주변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모여 있어서 추위도 녹일 겸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분이 4시 30분에 영업 마감이라고 안내했다.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청소하고 정리하는 느낌이긴 했는데, 늦은 시간이 아니라 가게가 마감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쩐지 그나마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나가더라니... 서둘러 커피를 마시고 주차해 둔 자전거를 타고 숙소 방향으로 가는데, 카페 직원분이 탄 퇴근 트럭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4시 30분에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카페 마감이 4시 30분이면 다른 상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빠르게 페달을 밟아 자전거를 반납하고, 어제 가지 못한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4시 30분에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이곳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내게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이니시모어는 시간이 멈춰진 폐허 같은 곳이었고, 나는 내 삶의 시간을 멈춰둔 채, 내 삶이 멈춰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시간이 멈춰 있던 건 이 섬뿐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