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Cogito, ergo, sum.

by MissP

대명사

1. 말하는 이가 대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아랫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주격 조사 ‘가’나 보격 조사 ‘가’가 붙으면 ‘내’가 된다.

명사
1. 남이 아닌 자기 자신.
2. (철학)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ㆍ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가끔 아주 비현실적으로 세상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오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마치 영화 속 거대한 세트장 같고,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났으며, 내가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나는 어째서 하필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 이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은 내게 원하는 것이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무엇으로 인간은 존재하는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과연 인간은 진리에 도달하였는가?


물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런 생각이 실제로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멋들어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는 겉치레차린 옷과 품위가 필요하고, 마트에서 과일을 살 때는 할인카드나 현금이 필요하지, 자신의 존재 이유나 인간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은 실상 하등 쓸데없으므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수많은 정보와 미디어의 홍수 속,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함에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행복한 사진들, 미디어 속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의 풍족한 삶, 재벌가의 가족사, 인플루언서들의 브이로그 등등.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타인의 삶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삶이 아니고, 타인의 삶이다. 그들의 삶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타인의 삶의 뒷면은 알지 못한다.


현재 우리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과, 어느 때보다 쉬운 연결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를 한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가 하는 것이 정말 대화인가?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대화란 본디 마주 보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인데, 이제 사람들은 마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주고받지 않고,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나열하기 바쁘다. 그렇게도 나를 나타내고 싶어 하면서 웃기게도 자신의 생각이란 것은 어느새 사라졌고,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무엇을 따라 하거나 따라 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잘 차려입고 남들의 시선을 빼앗고 싶은 모습이 나일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초의 모습 그 자체가 나일까? 나는 그런 겉치레가 아니다. 나라는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것들의 총집합체이다. 그래서 사람은 계속 생각해야 한다. 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궁극적인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거대하고 무섭기까지 한 미디어와 방대한 정보의 짓눌림에 나는 과연 제대로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사실 나도 의문이 든다. 내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맞는가? 나는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나는 과연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맞는 걸까?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 모두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차례로 눈이 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이 그 과정을 모두 보았다. 그녀가 본 세상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눈뜬 자로 벌어진 모든 일을 스스로 감내하며, 사유하고, 지켜보며 스스로의 판단으로 이해했다.


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나는 눈뜬 자로서 존재하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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