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세월의 흔적.
젊다.
1. 나이가 한창때에 있다.
2. 혈기 따위가 왕성하다.
3. 보기에 나이가 제 나이보다 적은 듯하다.
늙다.
1. 사람이나 동물, 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
2. 한창때를 지나 쇠퇴하다.
3. 식물 따위가 지나치게 익은 상태가 되다.
4. 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다.
5. 어떤 신분이나 자격에 맞는 시기가 지나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늙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확실히 어릴 때와 다른 점이 있다. 티브이를 켜고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느끼지 못했던 혼란스러움이 찾아온다. 탱탱하던 피부는 어느새 스스로 느낄 정도의 탄력이 저하된 것이 느껴지고, 때로 웃을 때 잡히는 콧잔등의 주름은 어느새 장점에서 단점이 되어 이제는 자리가 잡힐까 싶어 걱정이 된다.
여자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누가 나에게 어린 시절, 혹은 좀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나는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그냥 나는 조금 더 슬프더라도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만 더 아름답게 조금만 더 천천히 나이를 먹고 싶노라고 대답하고 싶다.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주 어릴 적, 앞자리가 바뀌는 것은 내게 좀 더 세상을 많이 살았다는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고 여자인지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셀카를 찍지 않고, 점차 거울을 자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서글퍼지는 마음은 피부과나 성형외과가 왜 그리 붐비고 잘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서도 오늘 찍은 이 사진이 다음주가 되면 분명 아 예뻤구나 하고 느낄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럼에 스스로를 잃지 말자 하면서 한 번 더 책을 들어보거나 끄적거리곤 한다.
선우용녀 선생님이나 윤여정 선생님처럼 원숙한 여배우들의 활동이 도드라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이가 든다는 것이 곧 늙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분들의 아름다움은 (물론 외형 역시 아름다우시지만) 외형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빛이 나고 화사한 내면의 힘, 그로부터 느껴지는 찬사가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온다. 어릴 적 기대했던 내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 나의 앞날이 그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외형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젊고 아름다운 피부는 반드시 주름이 지고 탄력을 잃는다. 아무리 피부과, 성형외과를 제 집처럼 들락거려도 외형적인 속도를 살짝 늦출 뿐, 결코 이길 수는 없다. 회춘하겠다고 아들 피까지 수혈받고, 하루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청춘에 집착하는 해외 어느 백만장자처럼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코 사람은 세월을 이길 수 없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인은 늙은 것인가?
청년은 젊은 것인가?
나 역시 젊음을 좋아한다.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생생한 혈기, 찬란함, 미래에 대한 풋풋한 기대. 젊음이라는 두 글자, 그 모습에서 나오는 싱그러움. 젊음의 향기는 모든 모습으로 참으로 생생하다. 시간이 지난 내 과거의 설익음과 젊음, 예쁘고 햇살 같은 모습은 지금의 내 외형이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젊은 이들의 그 생된 사랑스러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나를 나로서 있게 한다.
사람들이 젊음에 집착하고 젊어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내 과거로부터 온 미화된 환영.
젊은이들에게 투영된 자신의 과거.
그에 비해 나이 든 이들에게는 투영하지 않는다.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감정과 회피하고 싶은 미래.
젊음과 늙음은 여러 형상으로 영감을 준다. 영화와 그림, 음악으로 봐도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얼마 전 유행했던 서브스턴스만 보더라도 그렇다. 나는 징그러운 것을 잘 못 보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내용은 대충 알고 있다.
젊은 날의 찬사와 영화를 잃은 연예인의 젊음에 대한 집착. 개인적으로 비슷하다고 느끼는 영화로는 헬터스켈터가 있다.
클림트의 인생의 세시기를 보면, 사람들은 막상 노인의 부분은 자른 엄마와 아기만을 기억한다. 노인이 주는 느낌이 두렵기 때문일까. 실제 그림도 노인의 부분은 피부의 색채가 어둡고 노인은 얼굴을 감싸고는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모나리자의 충격적인 아름다움과 반고흐의 슬픔에 잠긴 노인이나 피카소의 기타 치는 눈먼 노인의 푸른 색감의 차이 역시 젊음과 늙음의 대비가 강렬히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젊고 환한 모습도, 노인의 깊은 우울과 괴로운 모습도 모든 모습은 영감을 주었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은 인류가 있어온 이래 꾸준히 바라는 것이다. 그 집착이 현대에 와서 과도화되었을 뿐이지, 어떤 세대, 시대에서도 없었던 적은 없다. 아름다움과 젊음은 인간이 간구하는 어쩔 수 없는 바람이다. 그건 평생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생이라는 시간 동안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혹은 평생 갖지 못할지도 모르는 미형.
그래서 나는 내 과거, 청춘들에게 말한다.
그 짧고 눈부신 순간을 즐겨라.
그렇지 못하면 후회만 남는다.
그리고 내 미래, 노년들에게 말한다.
지나온 시간에 감사하라.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10대와 20대라는 노랗고 생생한 카나리아꽃과 핑크빛 매혹적인 장미의 생생하리만치 시린 세월을 지나 푸르스름하게 물드는 제비꽃의 시절이 가면 좀 더 보랏빛을 띤 할미꽃의 계절이 오겠지만, 슬퍼할 이유는 없다.
고개 숙인 할미꽃의 흰털 사이로 그 안에 꽃은 무엇보다 고귀한 검붉고 진한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고개 숙인 그 아름다움의 세월을 누가 거부할 수 있으랴.
보다 젊게 늙자.
세상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 무엇보다 가벼운 민들레 홀씨가 되어 미련 없이 하늘을 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