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을 함께 가는 친구.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3. 몸이 편안하지 아니함.
4. 마음에 미안함.
5.(심리) 특정한 대상이 없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 안도감이나 확신이 상실된 심리 상태이다.
6.(철학)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 깃들인 허무에서 오는 위기적 의식. 이 앞에 직면해서 인간은 본래의 자기 자신, 즉 실존(實存)으로 도약한다.
나는 불안도가 높다.
이건 따로 검사를 받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타고난 기민한 성향과 배경, 생활환경에서 생성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예민하고 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자극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어릴 적부터 불안감이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일례로 강박적 행동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아니 중학교까지도 나는 수도 없이 손을 씻었다. 너무 씻어서 손이 다 틀 정도였다. 그리고 방안에 물건들을 내 방법에 맞추어 일렬로 정리했다.
무한도전 속의 노홍철 냉장고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방에 책장과 화장품, 서랍등 내 물건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모두 그렇게 정리했다. 그래서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왔는지 내 물건을 만졌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정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뒀던 자리에서 1mm만 벗어나도 티가 나니 말이다. 자라면서 강박적 행동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예민하고 제 자리에 두기를 좋아하고 날카롭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과 스스로 잘 극복한 조절법으로 온오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지만, 아직도 스트레스가 심해지거나 몸이 아프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를 괴롭게 하기도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질이 예민하고 섬세하며 깊게 느끼기 때문에 타인보다 더 강한 감동과 자극을 받는다. 때문에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듯이 상처를 받으면 깊고 오래 유지된다. 나는 꽤 단단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잘 지킨다. 하지만 유리는 매우 단단하지만 깨지면 산산조각 나듯이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항상 유리를 조심히 다루듯이 스스로를 조심히 다룬다. 그러나 인생이란 항해에서 망망대해에 스스로만 떠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망망대해는 작은 물고기부터 상어까지 온갖 물고기 떼가 다니고, 어쩌다 보면 다른 배도 만날 수 있는 곳 아니겠나.
그리고 신이 내게 바다를 허락하여 잔잔한 항해가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내 머릿속은 항상 바쁘고 끝없이 펼쳐진 인생이란 바다에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부터 이미 일어난 일까지 말이다. 거기에 더하는 온갖 상상까지.
사람들은 보통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기 기분대로 해석한다. 특히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가감이 없다. 그리고 나에게 그들이 느낀 바대로 행동한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겠지만) 그런 점은 나에게 큰 위협이 된다. 그래서 나는 불안과 손을 맞잡았다. 내가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불안한 나에게 알려주고, 불안해도 되는 상황에서는 위로해 주며, 타인에게 큰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됨을 스스로가 알아차리게 해 준다.
그러면 나 안에서 스멀스멀 커져가던 검은색이 곧 여러 가지 빛깔로 흩어진다.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 나처럼 예민하고 작은 것에도 놀라는 사람에게는 제일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영향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겪을수록 온오프가 필요하다. 무던한 사람도 온오프가 필요하겠지만, 당신이 만일 예민하다면 꼭 긴급 스위치를 두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회사에 있는데 다른 이유로 너무 힘들어서 일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다거나, 날이 너무 더워 무기력해진 내가 너무 싫은데 할 일이 있다. 당신은 그 일을 미룰 순 없다. 그러면 당신은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을 소모해서 긴급 스위치를 켠다. 아주 좋아하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듣는다거나 잠시 조용한 곳을 걷는다거나, 정 장소가 없다면 이어폰을 끼고 탕비실이나 화장실 끝 칸에서 조용히 명상을 해도 좋다. 자신을 위한 긴급 스위치를 잠깐 켰다 끄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알아차려주면 당신의 속 안에 있던 불안이 자기를 알아봐 주는 것을 깨닫고 잠잠해질 것이다.
내 긴급 스위치는 이제는 너무 닳아 가끔은 고장 나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훌륭하게 작동 중이다. 특히나 내 긴급 스위치는 햇빛과 시너지가 좋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적으로 조금 힘들어졌다가도, 30분 정도의 산책이나 바람이나 햇빛이 드는 곳에서 잠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적당한 평온을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명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온한 상태가 계속 유지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나는 불안이 생존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불안하지 않다면, 사람은 앞날을 유추할 때 최악과 최선, 차선과 차악등의 여러 상황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보다 몸집이 큰 호랑이나 곰에게 겁 없이 달려들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불안이 없다면 빨간불에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일 것이고, 바람난 애인의 상태를 모르고 불행의 구렁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불안은 행복과 생존에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
모든 매체에서 마치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행복을 논한다. 모두가 마치 행복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처럼 행복함과 행복한 나, 행복해지는 법을 앞다투어 떠든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감명을 받으면서도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낀다.
나는 행복하지만, 그 행복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침에 일어나 카카오 2스푼을 입안에 털어 넣고 오물거린다. 사과나 토마토를 먹고 여름이 다가오면 수박을 먹는다. 그 행위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만약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야 한다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럼 불안감이 몰려오지만,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불안하면서도 행복하고 즐겁다.
그러니 불안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불안감이 조절이 안될 정도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불안한 나를 잘 토닥여주자. 그러다 보면 불안도 어느샌가 잦아들고 다시금 평온한 상태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