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

각자의 왜곡된, 그리고 주관적인 시선.

by MissP

아샤 : 죄송하지만 오늘 밤, 이 소원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매그니피코 왕 : 와우, 생각보다 더 빠른데? 보통은 눈치를 보면서 기본 몇 달, 심지어 1년은 기다렸다가 부탁을 하는데.

아샤 : 정말 죄송해요, 꼭 들어달라는 건 아닌데.

매그니피코 왕 : 아니 괜찮아. 보자 소원이 뭔지. 정말 아름다운 소원이구나. 아름다워. 흠.. 그런데 이걸 어쩌나? 위험한데.

아샤 : 위험해요?

매그니피코 왕 : 너의 사바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다음 세대에게 심어주려고 해. 만들어? 뭘? 반역자? 반란군? 만들어서 로샤스를 뒤엎어라, 이건가?

아샤 : 우리 사바는 남을 해칠 분이 아니세요.

매그니피코 왕 : 그건 네 생각이겠지.

아샤 : 아니에요, 제가 알아요.

매그니피코 왕 : 어린 네가 뭘 알아? 안 그래? 어쨌든 나는 로샤스를 이롭게 할 소원만을 들어줄 책임이 있다.

아샤 : 그럼 이 소원들 대부분은 들어주지 않으시겠네요.

매그니피코 왕 : 그렇지, 하지만 끝까지 지킬 거야.

아샤 : 주인한테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매그니피코 왕 : 무슨 말이지?

아샤 : 어차피 들어주지 않을 거 돌려주시면 되잖아요? 어차피 각자가 이루려고 노력할 거 같은데요?

매그니피코 왕 : 모르면 가만히 있어.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여기 맡긴 거야.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과정이 힘들다고 그런 자들이 맡긴 거야. 본인의 의지로. 그들이 걱정을 잊게 하는 게 내가 할 일이야.

아샤 : 걱정 속 의지와 함께 모든 걸 잊게 하셨잖아요. 사바는 좋은 분이세요. 로샤스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_ 위시


나는 나를 어린 시절로 돌려주는 디즈니를 정말로 사랑한다. 항상 나의 마음을 채워주고 아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기 때문일까? 다양성의 존중, 진정한 아름다움의 가치, 선하고 도덕적인 주인공들, 순수하고 순진한 로맨스, 소중한 가족애, 서로에게 충성스러운 친구들, 결핍이나 콤플렉스의 승화, 트라우마나 역경을 이겨내는 힘. 어린 시절 보기에도 무서웠던 노트르담의 꼽추마저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나의 시선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안다. 디즈니를 볼 때면 항상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웃고 울고 즐겁다. 그런데 2번이나 시도했음에도 웃지 못한 작품이 딱 하나 있다. 위시. 무려 100주년 작품이었는데 말이다.


위시의 빌런은 누구일까?
나는 매그니피코 왕이 아닌 주인공인 아샤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끝까지 보지 못하고 단지 즐거움이 아닌 결말을 보기 위해 재시도를 해야 했던 디즈니의 작품.


내가 너무 때가 묻은 걸까?

나는 아샤가 매그니피코 왕보다 더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의 시선, 그것도 어이없게도 자신의 이기심에 휩싸여 그릇된 결정을 해놓고 마치 상대가 빌런인 것처럼 매도하는 악녀다.


매그니피코 왕은 초반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고 아샤에게 말을 한다. 평생 지켜주겠노라고. 그건 아샤가 매그니피코왕에게 보였던 무례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아샤는 집으로 돌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던 말. 할아버지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원이 무엇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하려고 한다. 분명히 왕후가 소원을 보아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알고 싶지 않다고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샤는 본인의 생각에 매몰되어 타인들의 감정이나 상태는 존중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판단만 계속한다. 내가 어린아이였다면, 나는 아샤를 이해했을까?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 꼰대가 되었던 걸까?


소원을 이루어주는 별을 만나 소원을 훔쳐 나누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의지이다.


객관적으로 보자.

매그니피코왕은 로샤스에 이주해 살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을 받아 로샤스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 바친 소원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지만, 매년 일정한 소원을 왕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주고 그 소원은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도록 선택된다. 기본적인 선택은 왕의 몫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진 않는다. 소원을 바치고 싶지 않다면, 본래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떠나면 된다.


아샤의 입장을 보자. 아샤는 원래가 왕의 수습생이 되고 싶어 했다. 수습생 본인 혹은 가족의 소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분명하게 주의를 듣는다. 일을 하는 와중에 혹시나 소원이나 마법을 보더라도 절대 건드리거나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왕의 호의로 소원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고, 개중에 할아버지의 소원을 골라 무려 왕에게 청탁을 한다. 왕은 당황하지만, 소원을 보고는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이건 들어줄 수 없다고 말이다. 생각을 해보자. 왕은 소원에 대한 권한이 있고, 소원을 바친 그 권한에 대한 대가를 모두 알고 있으며, 선택 역시 왕의 몫이라는 것을 로샤스의 국민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아샤는 무례하게 굴었고, 왕에게 대들었다. 그 대가로 작은 벌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부정청탁을 시도한 건 주인공인 아샤이고, 무려 도둑질까지 하는 것까지 마치 정당한 것처럼 포장하는 것도 아샤이다. 도대체 디즈니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의 이기심?

비합리적인 사람의 본성?


왕이 어디가 잘못되었나?

이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는 남의 소원을 얻은 대가로 왕은 그들의 고민과 슬픔을 거두고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돌보기까지 했다. 주인공은 바뀌어야 했다. 매그니피코 왕으로 말이다. 자기 합리화에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악녀에게 당하는 왕으로 말이다.


왕이 갑자기 흑화 하는 장면도 아샤의 도둑질을 돕기 위해 친구들이 방해하면서 모든 국민이 왕에게 자신의 소원만을 들어달라며 소원성취식을 한 번 더 해달라고 하면서부터이다. 왕은 왕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반역자 찾기를 모든 국민들이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사람들은 단지 어서 빨리 자기 소원만을 이뤄지기를 원했고 이에 왕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시당한 것을 느끼고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에게서 아샤가 소원을 훔쳐가는 바람에 화가 난 왕이 아샤 엄마의 소원을 파괴하다가 소원을 흡수하면 힘을 얻는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모든 비극은 주인공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아샤의 부모님, 친구들 역시 잘못되었다. 잘못은 모두 매그니피코 왕의 탓이라고 한다.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은가?


도둑질은 잘못된 것이다.

남의 것을 탐하는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소원을 자기들이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노력을 하면 될 것을 마치 복권처럼 당첨되기를 바라며 갖다 바친 건 국민들 자신들이면서 모든 죄는 왕에게 있는 것처럼 말한다. 왕도 사람인데, 그 사람의 노력과 가치는 무시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의 최대 피해자는 매그니피코 왕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기댈 데가 오죽 없었으면 하고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고, 흑화 된 자신의 모습에 이유조차 묻지 않으며 자신의 배우자에게까지 뒤통수를 맞는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도대체 제작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으며, 디즈니는 왜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나? 혹시 내가 모르는 블랙조크인가. 한동안 디즈니가 보였던 PC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자가검열이자 비판인가?


그러나 역시 나는 이 작품에서도 느낀 바가 있다. 불쾌하긴 하지만, 깨달음은 있다. 나 역시 매우 편협한 사람이므로 나의 시선과 태도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를 오해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


물론 맞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자신의 시선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진실과 다르게 시선은 항상 왜곡되어 있다. 시선은 때때로 바뀌지 않는가. 마치 어릴 적 우리는 모두 둘리의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오해받고 있던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책임감 있으며 능력 있고 따뜻했던 고길동 아저씨처럼 말이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이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때로는 죽을 때까지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오해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관계란 모름지기 나뿐 아니라 타인의 시선도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쪽의 이해와 인내만으로는 모든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비록 편협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그릇을 좀 더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내 곁에 그런 사람들이 많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내 곁의 모든 이들과의 관계가 부디 평온하기를. 서로에게 귀감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부디 좋은 사람이 흑화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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