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것.

by MissP

1.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2. 주의 또는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미술) 투시 도법에서, 시점(視點)과 물체의 각 점을 잇는 직선.
4.(의학) 눈동자의 중심점과 외계의 시점을 연결하는 직선.


스쳐 지나가는 그 남자가 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가 잡은 내 팔 위로 자그마한 떨림이 전해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동요하고 있다.
순간의 찰나, 그녀의 동요가 내게 전해졌다.
나는 온몸이 차갑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 안의 것들은 폭발하기 전의 용광로처럼 붉게 타올랐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발걸음을 더 빨리 옮겼다.
절대 빼앗길 수 없다.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너는 내 것이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스쳐가듯 지나가는 바람에 물들어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던 그 눈빛들은 무슨 뜻일까.
본능에 허우적거리는 원죄의 달콤함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안함이 출렁였다.
나는 지금 누구의 팔을 잡고 있는가.

그들은 스쳐 지나가며 서로에게 달려가고 싶은 감정을 가까스로 삼켰다.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그도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이상 소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의 내용은 사실일까?

두 사람은 지나가다 눈이 맞아 바람이 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불륜이나 바람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이다.

저걸 쓰게 된 일은 다음과 같다.


비 오는 날 신호등 건널목에 서있는데 바로 옆에 웬 커플이 있었다. 그날따라 신호가 길었고, 비가 오는데도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 빗방울이 계속해서 튀는 불상사가 일어나 매우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차가 오는 것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커플 중 남성과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서로 뻘쭘해하면서 시선을 돌리고 차가 오면 뒤로 물러섰다. 신호가 바뀌자 나도 그 커플도 모두 행복하게 길을 건넜고, 안전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결코 나도 그 남자분도 서로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이 일로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기분이 좋아졌다. 저 글을 쓰고 남김으로 인해 그날은 비 오는 풍경부터 차를 기다리는 순간, 그 커플까지 모두 각인이 되었다.


'만약에.'


단순히 그 생각으로 당시 저 글을 써봤다.

매우 어설프고 짧지만 실제 있을 법하지 않은가?

어떤가?

세상의 모든 일이 겪어야만 아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술도 창작도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기도 측우기도 심지어 우리가 모두 쓰는 한글마저도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겪어야만 아는 것들도 있다. 사랑, 애정, 우정, 증오, 공포 같은 감정들은 깊게 각인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다시 발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통 겪어야 하는 것은 감정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도 흉내 낼 수 있다.


만약 감정을 모방할 수 없다면 세상의 모든 배우는 자신이 살인자이거나 살인자에게 부모를 잃고, 배우자가 살해당했으며, 납치나 폭력에 노출된 삶을 살았고, 심각한 불치병이나 에이즈에 걸렸으며 성범죄에 연루되었거나 마약중독자일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뿐인가? 작가는 수없이 사람을 죽였어야 하고, 그들의 애인은 살아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스토킹을 일상다반사로 당하고 항상 국제범죄집단과 연루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건 특수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된 사항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삶을 산 배우들도 있고, 극히 일반적인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저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뒤를 조금만 더 써보면 다음과 같다. 형식은 바꿔보자. 이왕 쓰는 김에 남녀 이름도 정해보자. 여자의 이름은 희선, 여자의 애인은 정민, 눈이 마주친 남자는 현우, 남자의 애인은 민정이라고 하자.


희선은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마치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를 향해 아우성치는 것처럼 그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희선과 현우는 그대로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희선은 가늘게 떨리는 손을 정민의 팔에서 놓지 못한 채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정민은 검은 코트 위에 가늘게 떨리는 희선의 마음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그녀를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마음에 일렁이는 큰 동요를 지우고 싶다는 듯이.

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우는 살면서 그토록 떨리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민정은 남자의 변심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현우는 민정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기에 마치 그를 가두는 감옥같이 느껴졌다.

"먼저 갈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어. 정말 미안해, 민정아"

"오빠!"

그는 그대로 자신을 향해 아련히 소리치는 그의 여자를 버려둔 채, 오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푸른색 재킷이었지? 분명..'

그는 속으로 그녀의 옷차림을 기억하며 뛰었다. 벌써 가버린 걸까? 도무지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사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통유리로 된 카페로 들어가는 그녀가 보였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향해 달렸다.

"저기요!"

뒤에서 들리는 묵직한 남성의 목소리에 희선과 정민은 뒤를 돌아보았다. 정민이 희선을 자신의 등뒤로 숨긴 채 차분히 물었다.

"뭡니까?"

현우는 가뿐 숨을 몰아쉬고, 어지러운 생각과 마음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행여 그녀를 놓칠까 따라왔지만, 미친 사람이 아닌가. 그는 최대한 정중히 말을 건넸다.

"아, 정말 이상한 걸 아는데요, 근데 이때가 아니면 물을 수가 없을 거 같아요. 죄송하지만 여자분께 뭔가 묻고 싶습니다."

그의 등장에 정민은 한층 더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한테 하세요. 도대체 남의 애인에게 뭘 묻고 싶은 겁니까?"

그때 희선의 가냘픈 팔이 정민을 당겼다.

"하지 마, 정민아."

정민은 화가 났다.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잃고 그녀에게 뭐라고 할 순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희선의 눈빛은 차마, 이미 그의 모든 감각은 그녀는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자신을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며 방긋 웃던 그녀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허무한 끝을 짐작하진 못했다. 정민은 도저히 희선을 잃을 순 없었다. 정민은 달아오르는 분노를 참고 희선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희선아, 저 사람하고 대화해보고 싶어?"

"응."

"왜? 혹시 모르니까 같이 있을까?"

"아니, 들어가."

그녀의 단호한 거절에 정민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그녀에게 화도 못 내고 이렇게 가만히 있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병신 같은지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슬픔을 감추고 희선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녀에게 애원하듯이.

"알았어. 안에 들어가 있을 테니 .... 빨리 와."


과연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의 애인을 배신하고 사랑을 시작했을 것이다. 혹은 어떤 말로 운을 떼야할지 말을 망설이던 현우에게 때마침 걸려온 민정의 사고 소식을 알리는 전화에 현우는 뒤돌아 민정을 향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만일 소설이나 영화라면 두 사람은 마치 두 사람에게 분노한 애인들과 클로저 같은 결말을 맞거나 혹은 불치병에 걸려 너는 내 운명을 찍거나, 혹은 기욤 뮈소의 책처럼 정말로 운명(destiny)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둘이 알아서 하게 두고 싶다. 나는 전문 글쟁이가 아니므로 저 정도에서 만족하겠다.)


나는 일부 이런 시선을 지녔다. 때때로 나는 저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많은 것을 받고는 한다. 사람들도 각각 자신의 시선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궁금하다. 그들이 가진 시선의 힘.


시선, 그것이 지닌 힘은 곧 세상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시선을 지녔으면 한다. 좀 더 다르게, 서로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의 시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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