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의 기준이라는 것이.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에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진짜 사랑하겠지.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를 안을 때 아무리 흥분해 봤자,
그 사람의 마음에 틈새가 있는데.
빗물이 보다 가까이 내게로 떨어졌다.
나의 뺨을 스치고 내리는 순간에,
손으로 탈탈 털어내려는 내 손목에,
너의 시선이 닿는 순간에,
그 순간에 너와 나는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어느샌가 눈이 마주친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우리의 눈이
예전처럼 서로와 같지 않다는 걸 알까.
가볍게 건네준 티슈 밑에
가늘게 떨리는 네 손가락이
마치 선율처럼 내 귓가를 울린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아직도 친구 사이일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의 기준이 뭘까?
단순히 좋고, 즐겁고, 만나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설레고, 얼굴이 빨개지고, 만지고 싶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걸까? 아니면 같이 있으면 안정되고, 편안하고, 행복한 걸까?
누군가를 '어떻게' 좋아한다는 것의 기준은 뭘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남녀 사이에는 설렘과 흥분, 욕망이 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만일 연인으로 이어진다면, 가슴 설레는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의 모습은 점점 안정되고, 편안함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 밑에는 서로에 대한 무언의 언약으로 맺어진 신뢰와 관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낯선 남녀가 서로 만나 편안하고 안정된 관계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설렘과 흥분, 욕망이 강렬하게 끌리는 관계가 되는 것은?
남녀 사이의 친구.
나는 존재한다고는 생각한다. 정말로 말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분명 우리가 이성적으로 끌리는 부분이 없거나 혹은 이성(異性)적인 끌림보다 이성(理性)이 발달했을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발달했기에 논리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또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며, 쌍방이 서로를 존중하고 관계의 거리를 매우 적당히 둘 수 있다. 그렇다면 친구가 가능하다. (물론 모든 관계가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성 간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논리적인 판단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에 아주 건강한 상태의 친구가 가능하다는 것은 나는 고도로 지능이 발달된 사람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에 합리적인 판단보다 감정이 앞선다면,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많은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태초에 태어나기를 본디 남녀가 다르게 태어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LGBTQ+ 응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고, 순간의 선택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때문에 지금의 선택이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리스크가 큰 선택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만약 당신에게 정말 좋은 이성친구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오랜 시간 유지했다고 치자. 어느 순간, 이성적 끌림이 강렬하게 들어와 두 사람을 묘한 공기로 이끌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부터 이성적인 느낌이 없었던 관계라고 치자.)
만약에 분위기나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이성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당신은 후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가? 삼고초려해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또한, 당신이 현재의 우정 혹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더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우리에게 머리가 가장 몸의 윗부분, 상위에 달린 이유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결정을 하고 산다. 스스로 제일 합리적이고 타당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어쩌면 가장 멍청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보면 사실 답은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솔직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껴진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남녀 사이에는 친구는 존재하는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 제일 좋은 사람은 연인에게서나 가능한 것일까? 난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이성에게 이성친구가 있다면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헝거게임 시리즈를 보면 우리의 주인공 캣니스는 게일을 좋아한다. 가장 열악한 12 구역에 거주하며, 가족들을 위해 항상 희생하던 캣니스는 다가온 헝거게임의 추첨식에서 자신의 예쁜 동생 프림로즈가 참여자가 되자 자진해서 참여하기를 결정한다. 그때 피타가 남성 참여자로 자진한다. 두 사람은 헝거게임에 참여하면서 생존을 목표로 가짜 사랑을 시작하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생존한다.
사실 피타는 캣니스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사랑을 하는 척을 했던 것이라, 가짜가 아니라 진짜 사랑이기는 하다. 캣니스 역시 같은 구역에서 지낼 때 빵을 몰래 주고, 살피는 등 도움을 준 피타에게 호감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므로 거짓은 아니다. 다만, 오빠처럼 어울렸던 게일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라며 자신을 속였던 것뿐이었다. 캣니스가 피터를 사랑했다는 것은 헝거게임의 마지막에 독이 뜬 자물쇠딸기를 먹으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캣니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그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돌아온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헝거게임에 참가하며, 피타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캣니스는 그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사실 게일이 아니라 피타를 사랑했다는 것을 말이다. 캣니스는 피타를 친구라며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사실은 피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트와일라잇 속 벨라는 제이콥과 에드워드 사이를 오간다. 그녀는 친구를 친구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둘 사이를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에드워드의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야 에드워드의 곁을 선택한다.
두 경우 모두 처음부터 캣니스는 피타를, 벨라는 제이콥을 이성으로 보고 있었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던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성범죄 수사대 SVU의 시즌 초반 주인공인 엘리엇 스테이블러와 올리비아 벤슨의 경우는 도가 살짝 지나치긴 하지만 정말로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동료이자 친구다. 둘은 많은 위험을 함께 넘으면서 서로에게 애착이 강해져 떼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엘리엇의 가정에 영향을 줄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건 시즌을 전부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감정적으로 이해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엘리엇의 부인마저 올리비아를 가족처럼 여긴다.) 소중한 친구이다.
마찬가지로 타우누스 시리즈의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과 피아 키르히호프 역시 매우 합이 잘 맞는 친구이자 동료다. 물론 올리비아와 엘리엇, 올리버와 피아 모두 직업 특성상 더 끈끈한 그들만의 유대관계가 있었겠지만, 그뿐은 아니다. 서로에게 정말로 소중한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이다.
현실에서도 분명 이러한 관계는 있다. 단지, 이성관계에 비하여 현저히 적을 뿐이다. 대부분의 남녀 문제는 이성 친구, 이성관계에서 제일 많이 일어난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이성 관계에서는 각자의 인정 범위나 폭이 많이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엘리엇처럼 목숨을 걸고 올리비아를 구하거나, 분노를 참지 못해 사람을 때리진 않으니까 말이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분명 엘리엇과 부인은 올리비아의 문제를 두고 싸웠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만일 자신과 애인의 이성친구를 구분하는 선이 다르다면, 이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선은 인정하는 편이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외간 여자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눈'만 마주치기만 해라. _ 이 중의적 표현에 동의하실 분들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더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반, 혹은 반 이상이 이성일 수 있는데 말이다. 연인과의 사이에서는 신뢰가 기반이 되어 있을 테니 믿는 것이 제일 최우선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았다고 한들, 간혹 도가 지나치다는 평을 듣는 예능의 방송 장면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장면들이 모두 이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 연인을 나와 동일시하여 인식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인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와 같기 때문이다.
'나'라서, '나'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소중하기에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친구는 어떻게 인식할까? 논문이나 전문가적 견해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 역시 아주 근접한 부분에서 인식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에 흔히 말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일, 두 사람 모두가 자신의 지능을 사용하며 분류하고 정말로 '우정'이라는 것에 가치를 크게 두고 있다면, 그 관계는 오랜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선이라는 것이 연인보다 우위, 혹은 근접해 있다면 그 역시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친구라면 상대가 괴로운 상황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 말이다. (비단 친구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 곤란한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본능과 감정을 외면한 것이다. 친구라는 이름 하에 말이다.
결국 자신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성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어 친구를 유지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혹시나 애인이 당신에게 당신의 이성친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면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선을 잘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이 보편적인 선에서 타당하고, 합리적인가?
물론 상대의 오해이거나, 의심일 수도 있지만 이경우는 어떻게 해줄 수 없겠다. 의심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부디 잘 이겨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한 마디쯤은 붙여줄 수 있겠다.
이 바보야, 네가 좋아하는 건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