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변화.
생각이라는 건 참 우습지.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생각이라는 건
너무나 상대적이어서
불과 얼마 전에 쓴 글조차
내 생각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
예상조차 못 했다는 게 말이야.
스스로 괜찮다고 세뇌하여
진짜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몸이 안다.
아니었다.
온몸이 아프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계속해서 화가 나고 괴로운 건
돌아봐주지 않는 자신에게 보내는
끝없는 신호라는 것을.
정말로 신기하게도 몸이 안다.
머리보다 빨리, 무의식보다 재빠르게.
나는 정말 잘 운다.
멜로 영화 속 이별하는 주인공들처럼 예쁘게 눈물만 또르르 흘릴 때도 있고, 이별 후 떠난 자리를 보며 참아왔던 눈물을 구슬프게 흘릴 수도 있다. 재난 영화 속 가족을 잃은 주인공처럼 세상이 떠나가라 오열할 수도 있다.
물론 진심이다. 대체로 나의 눈물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때로는 그냥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로 너무 힘들어서 아우성치고 있는 나를 애써 그러하다고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 나를 투영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그 슬픔에 동화됨과 동시에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대할 때 낯설고 조심스럽다. 그러다가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면 꽤나 활발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매번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활발해 보일 때도 있고, 매우 조용하게 지낼 때도 있다. 사회의 환경에 맞추어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예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와 자주 이야기를 하다가 공통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그 언니는 내게 내가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면이 있다고 했다. 그 언니가 가진 직업 중에 내가 하던 일과 매우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 일이 있었는데 사람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 의미인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라 겉으로는 활발해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는 많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 같았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을 잃었을 때조차도, 내가 원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조차도, 그저 단순히 애인과 헤어졌을 때에도 나는 누군가의 앞에서 울지 않았다. 대신에 혼자 있을 때에는 너무 깊은 우울과 상심에 하루 종일 울기도 했다.
이런 억눌림이 결국에는 큰 사달을 만든 것이 아닐까. 어느샌가 폭풍우처럼 몰아쳐서 나를 너무 힘들게한다. 사실은 누군가의 작은 위로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내가 그들을 들여다봐주듯이 나를 들여다봐주기를 말이다. 너무 지쳐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나를 한번쯤은 그냥 말없이 안아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