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움.

예민하다는 것.

by MissP

궤도 : 면도칼이 우리가 쓰는 것 중에 가장 날카로운 검 아니겠습니까?
면도칼이 무뎌지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철이 고작 단백질한테 밀리지?
우리가 보통 잘 드는 칼이라는 표현은 날이 엄청 서있다는 뜻이거든요.
날카롭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입자가 적게 붙어있다는 겁니다.
끝으로 가면 끝으로 갈수록 점점 더 입자가 몇 개 없겠죠?
그러니까 얘네는 쉽게 떨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날카로울수록 이가 잘 나갑니다.
안현모 : 내구성이 약하다는 뜻이겠네요.
궤도 : 그리고 수염 같은 경우가 우리 몸에 있는 털 중에 가장 질긴 털에 속해요.
그리고 방향 같은 경우가 고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각도로 돼 있는 무작위의 털을 자르다 보니까 면도칼의 이가 나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수염을 도끼로 깎으면 이가 안 나가요.
그래서 베르세르크에서 나오는 가츠의 무기로 수염을 깎으면 이가 안 나가요.

라플 위플리 시즌2 5화 대화중


어릴 적, 칼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 살이 크게 베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놀란 나는 아픈 것보다 엄마에게 혼이 날까 봐 얼른 집어 붙어버렸다. 밴드로 감싸고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저녁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들켰지만, 다행히 크게 혼나진 않았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매우 잘 아물었다. 이처럼 날카로운 물건에는 잘 다치고,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사실 이건 모두 알다시피 사람에게도 적용이 된다. 날카롭고 예민하고 매서운 사람은 칼이 되어 타인과 자신을 상처 입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은 왜 날카로워졌을까? 타고난 기질이든 후천적 성격이든 무관하다. 결국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테니까.


저 대화를 보면 도끼는 쉬이 이가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도끼는 무딘 사람에 비할 수 있다. 좀 더 강직한 사람, 큰 변동이 없는 사람.


그렇지만 날카로운 면도날이든 무딘 도끼날이든 어느 순간이고 손질을 해줘야 하거나 못쓰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입자가 적게 붙어있어 금방 티가 나는 사람이든 입자가 많이 붙어있어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이든 우리가 항상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모든 칼날은 쓰면 쓸수록 못 쓰게 되듯이.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날카롭고 까칠한 사람. 물론 태생에 그러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만큼 필요한 배려와 사랑이 부족했을 수 있다. 무딘 사람은 정말로 무딘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아도 티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나는 본래 머리끝까지 화가 나면 (정말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10분 내지 15분 정도 그 사람 혹은 그 상황을 벗어난다.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되면 다시 이어나간다. 또는 엄청나게 논리적이 되거나 사무적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조절이 안된다. 마구 고함을 지르거나 엉엉 울고 싶은 생각이나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본래 모습이라는 것이 있는걸까?


그래서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었다. 왜 인터넷의 많은 영상들이 말해주지 않나. 당신의 애인, 당신의 부모, 당신의 자녀, 당신의 배우자들을 상대할 때 혹은 그들의 행동이 이렇다 저렇다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론적인 답변일 뿐, 실제로 생각해 보자. 정말로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꼴도 보기 싫은 애인의 얼굴,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있는 부모의 얼굴, 며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는데 다 어질러놓은 자녀의 얼굴, 퇴근하고 왔는데 엉망이 된 집 꼬락서니를 말이다.


헤어지면 끝일 애인의 싸우거나 소리치거나 우는 얼굴? 멋있게 이성적으로 해결하라고? 당신이라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지긋지긋하겠나. 울거나 말거나 꼴도 보기 싫겠지. 울고불고하는 당사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헤어지고 그립긴 개뿔. 그리우면 그건 싫은 게 아니다. 결별한 애인이 그리워진 헤어진 당신의 손목을 잘라라.


알아서 잘할 텐데 계속해서 잔소리하는 부모의 얼굴? 과연 웃는 얼굴로 대화를 시도할 수 있겠나? 놔둬라. 어차피 인생이 망가질 거면 망가질 거고 잘 살 거면 알아서 잘 살 거다. 괜한 스트레스 서로 받아가다가 가족 관계 망치지 말고 말이다. 나중에 말년에 가서 고생할 거다.


말 안 드는 자녀도 마찬가지다. 집안 꼴을 봐라. 고함을 안 칠 수가 있나. 당신의 자녀가 예술세계를 펼친다고 온 집안에 낙서를 해대는 걸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나중에 몇억짜리 손해배상을 청구받게 될 것이다. 뭐 괜찮다. 당신 손해지 내 손핸가. (그렇다고 식당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놔두는 순간, 당신의 자녀는 예의는 밥 말아먹은 채, 언젠가는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호되게 당할 거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널브러진 배우자의 얼굴? 애들은 온몸에 짜장을 묻히고 있고, 집안은 어질러져있고, 배우자는 배 까고 소파에 누워있다고 생각해 보자. 귀여우면 사랑이고, 화가 나면 정상이다. 최악의 경우라고 해봤자 이혼이다. 다신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혹은 우리가 잔소리하고 화를 내는 이유는 어쩌면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사랑이 기반에 있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해진 애인에게 이별을 말하는 이유, 뒤돌아보지 않는 이유, 나이 지긋한 부모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 이유, 자녀에게 잔소리조차 하지 않는 이유, 배우자와 헤어지는 이유는 모두 무관심이다. 사랑이 식은 자리에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 존재한다. 어쩌면 사랑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관심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외로움이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왜 외로울까?

나는 지금 외롭다. 정확히 외롭다기보다는 적막하다. 마음속에 구멍이 너무 크고 깊은데 이전에는 물이 찰랑한 것처럼 금세 구멍을 매워주는 것들이 있었다. 멀리 밀려갔다가도 다시 차오르는 물길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아주 작은.


그런데 지금은 물길이 막혔는지 차도 반만 차거나 아니면 차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고독은 점차 메마른 땅에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처럼 형태를 잃고 외로움으로 변한다.


영화 정글크루즈 속 아기레 일당이 모든 수분을 잃어 매우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내 내면은 마치 그들처럼 메말랐다. 그전에는 프란시스코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저주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물길이 열리고 프란시스코처럼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젠장할, 아기레로 남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내 모습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가 사회에서 사람들을 상대할수록 더 그러하다. 그렇지만, 그런 내 모습을 나조차 외면한다면 상태는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껏 너무나 애써주어 고맙고 기특한 나의 투정을. 나조차도 조금은 벅차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나의 투정을 말이다.


나는 꽤나 날카로우면서 예리한 칼날이면서도 무딘 칼이었다. 아니, 무디기보다는 굵은 칼날이었다. 그래서 상처 입으면서도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을 버티며 갈고닦았다.


수없이 상처를 입는 와중,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을 거니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예민하다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 불안과 예민함의 근간에는 공포가 있었다.


생존에 대한 공포.


우리는 거대한 건물숲 사이에서 모두 잘 차려입고 잘 먹으며 잘 자고 살고 있지만, 마치 원시시대의 원주민들처럼 생존에 대한 공포를 은연중에 느끼며 산다. 나는 유독 그 감각이 발달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은 나를 위해 무뎌지는 연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공포에 시달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모와 신체적 부담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마치 도끼로 수염을 깎으면 이가 나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에 목이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지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