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지독히 버틴다는 것.

by MissP

지고로 : 검을 만드는 법을 아느냐?
젠이츠 :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 나 운다?
지고로 : 검은 말이다.
때리고 때리고 끝까지 때려서
불순물이나 여분을 날려버리고
강철의 순도를 올려서
강인한 검을 만드는 거다.
젠이츠 : 그래서 매일 나를 때리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칼날이 아니야.
인간의 몸이라고.
지고로 : 젠이츠, 끝까지 갈고닦아라.
울어도 된다, 도망가도 된다.
단, 포기하지 마라.
믿는 거다.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낸 나날들을.
반드시 보답이 있을 거다.


_ 귀멸의 칼날


인내라는 것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주신 고난이자 시험대이면서도 축복이다. 버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성장시킨다. 물론 이 험난하고 고단한 시험대에서 탈락하여 패배의 쓴맛을 느끼고는 다시금 도전하고 싶은 마음조차 앗아가 버릴 수도 있다.


버틴다는 것.

나는 정말로 잘 버티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몰랑몰랑한 아기씨였지만, 꽤나 끈기 있고 포기할 줄 몰랐다. 그 이면에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잘 해낼 거라는 믿음. 그런데 스스로를 너무 때리다 보니 어느 순간 부러진 것처럼 놓아버리게 되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감탄한 적이 있다. 나는 그냥 한다. 그냥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언뜻 들어서는 모를 것이다. 그냥 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순간뿐 아니라 괴롭고 아픈 순간에도 꾸준히 해낸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자 끈기. 인내라는 것이다.


우리는 확실히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요즘 그걸 특히 더 느낀다. 나는 남들보다 늦다. 성향인 것도 있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남들보다 늦게 스마트폰을 사용했고, 많이 움직였다. 예전에는 나는 불편해도 직접 가서 장을 보고, 가까운 거리는 (사실 조금 먼 거리도) 걸어 다녔다. 구글 지도를 보는 대신 지나치는 사람에게 길을 묻고, 받은 도움에 감사함을 느꼈다. 어쩌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워도 반드시 경찰이나 119등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모르는 이에게 행하는 이런 작은 행동은 사회를 결국 따스하게 만든다.


물론 개인의 사정도 있지만, 요즘은 나는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택배로 받는다.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와 읽고 싶은 책을 찾아 구경하는 것보다 궁금한 책을 온라인에서 주문한다. 때로는 특정 서점의 향기와 오래된 책방의 쿰쿰한 냄새를 맡아본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에 새삼 놀라곤 한다. 그리운 냄새. 도서관이나 오래된 책방 사이 책에 배어있는 씁쓸한 곰팡내와 적절한 습기,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은 사람을 참 그립게 만든다. (물론 새책 사이 퍼지는 마른 잉크와 새책의 향기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옷을 사러 매장을 가지도 않고, 마트를 가서 장을 보는 일도 드물어졌다. 백화점에 갈 때는 매장에 몇 개 남지 않은 단종 제품을 사러 갈 때뿐이다. 가만히 집에 앉아서 온갖 도시의 음식과 반찬, 신선식품들을 먹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맞는 걸까?


나는 현재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역시 유성호 교수님의 유튜브에서 추천한 것을 보고 마음에 닿아 온라인으로 주문한 것이다. (마음에 닿았을 뿐 온라인으로 주문했다니, 참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편리하다는 것을 멀리하기에는 우리 사회는 (사실은 나 스스로가) 너무나 멀리도 와버렸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나는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항상 든다. 나는 정말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가에 대해.


그래서 나는 어렵지만, 다시 일부 돌아가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사회에서 버틴다는 것이 새삼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처럼 야생 한가운데에 떨어져 개고생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나는 다시금 불편해질 생각이다. 왜냐,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젠이츠의 스승의 말처럼 때리고 때려서 불순물을 날리고 힘들면 도망도 가고 하겠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