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예상보다도 더 강력한.
닥터켈슨 : 스파이크, 메멘토 모리. 무슨 뜻이지?
스파이크 :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해라.
닥터켈슨 : 그게 진실이란다. 죽음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 그중에는 더 나은 죽음도 있단다. 최고는 평온한 죽음이지. 서로 사랑하면서 떠나는 것.
스파이크 : 사랑해요, 엄마.
닥터켈슨 : 아일라는 스파이크를 사랑하고
아일라 : 너무나요.
닥터켈슨 : 메멘토 아모리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라.
_ 28년 후
28년 후를 보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진격의 거인스러운 이상한 좀비가 나온다. 조금 신박하기는 하지만 굉장히 이질적이기도 하다.
주인공 아이인 스파이크는 죽어가는 엄마 아일라를 살리기 위해 미쳐있는지도 모르는 의사 켈슨을 찾아 안전한 집, 홀리 아일랜드를 떠난다. 엄마와 함께 좀비가 득실득실한 본토에서 첫날밤을 보내는데 기어 다니는 좀비가 나타나 아이의 신발끈을 먹다가 토하고 아이를 먹으려는 순간, 엄마가 그 좀비를 죽인다. 다음날, 아무것도 모르고 일어난 아이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있었노라고. 그저 아이를 위해 모르는 척을 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아이는 겨우 12살에 어린아인데 엄마를 지키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좀비가 가득한 본토로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횡설수설하는 엄마를 데리고 왔다. 엄마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바깥에서 겨우 구겨자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과연 몰랐을까. 저 작은 몸으로 무거운 책임감과 기대를 한가득 안고 자신을 집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 엄마는 아마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좀비가 공격하기 전, 두 모자는 누워 웃으며 아빠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아빠가 너에게 장난을 치냐고 물었고, 아이는 아빠의 부정을 알기에 싫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엄마는 이야기를 바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만큼은 장난꾸러기였다는 말을 한다. 그때 나는 엄마가 아빠의 부정을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사 몰랐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빠를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아이이니까. 그래도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죽고 나면 이 어린아이에게는, 내 아이에게는 아빠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아빠가 아이를 돌봐주어야 하니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세상, 그 한가운데 저 어린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니 말이다. 부족하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은 아이 아빠뿐이고, 자신이 죽은 후 아이가 보호 아래 잘 자라기를 바랄 것이다.
아일라에게는 지속 정신 착란과 섬망 같은 증상들이 보이는데, 그럼에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못한다. 정신이 나간 듯 보이지만 아이만큼은 알아보고, 아이만큼은 위험에 노출시키려 하지 않고, 아이와 아빠가 싸우는 그 순간에 기막히게도 아이를 부른다.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선택이니 걱정 말라며 아이에게 결코 죄책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순간들이야말로 부모의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자녀가 없지만,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행복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매우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라온다. 이 기억들, 느낌들은 아마 내 개인의 책임감도 있겠지만, 그간의 삶과 내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는 것, 절대 알 수 없을 타인의 마음은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되도록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두자. 서로에게 말이다.
예전에 엄마에게 화가 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두루뭉술하게 항상 넘어가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직접 물었다.
"엄마 나한테 미안하지?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해. 빨리."
그러자 엄마가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히히, 미안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고, 도도하고 새초롬하게 말했다.
"그래 알았어 용서해 줄게."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 서로의 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그럼에도 한 번 더 말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사랑해라고, 미안하다고 한 말에 대한 답변으로 말이다. 가능한 자주 표현하자.
메멘토 아모리스.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