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이 잘가라 하루야

햇살은 비치는데 바람이 차다

by 미스트

연초에 칼바람이 불도록 춥더니 살짝 따뜻해지면서 이러다 갑자기 초여름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 날씨가 아리송하다. 그래도 집 밖에 나가는 게 무서울 날씨들은 다 지나서 미세먼지가 덜한 날은 한강공원을 한참을 걷기도 했다. 무리 지어 농구를 하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조깅하는 사람들, 이런저런 사람 속에서 걷고 있다 보면 걸음수만큼 시간이 흐르는 게 자연스레 세어지고 머릿속에 있던 여러 생각들이 생겼다 사라졌다 했다.


퇴사를 한지도 5개월이 넘어가고 있는데 내가 느낀 퇴사의 유일하지만 강력한 장점은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장점을 활용해 오래간만에 커피챗을 하고 왔다. 기대했던 것보다 썩 만족스러운 자리는 아니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어딘가 오해가 섞인 얘기를 한 것 같아 후회를 하게 된다. 그렇다가도 잘 풀릴 것이었으면 어찌하든 잘 되었을 것이다 싶기도 해서 마음이 시무룩해졌다. 내 속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소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이 비겁해진 건지 솔직하고 싶어도 목구멍과 머릿속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말을 뱉으면 몇 개의 필터가 끼어 나가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 하루가 시무룩해져 버렸다. 너무 기분이 잡쳐지려 할 땐 따뜻한 이불로 몸을 감싸 체온으로 안을 데워 최대한 따뜻한 온기만 느끼고 있으려 한다. 그렇게라도 물리적인 안정감을 주면마음도 조금 나을까 해서 쓰는 방법인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것인진 모르겠다. 실망한다는 건 정말 지겨운 감정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으니 기대를 말어라라고들 하지만 아무런 기대가 없는 나날을 보낸다면 그것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후가 어찌 되든 보이지 않는 상상력과 기대로 가득 찬 날이 조금 더 활기차고 몸을 일으킬 원동력이 되어주니 말이다.


이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날은 글이라도 쓰려고 한다. 가능한 이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들이 쑤욱하고 다 글자들로 옮겨져서 내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앞 날은 모르는 것이라 살만한 것이긴 한데 가끔은 누가 너는 어찌 될 것이야 말해주면 싶다. 답답한 마음에 챗지피티한테도 지껄였다가 나의 작은 대나무숲인 이곳에 주절주절거렸다가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싶은 날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싶다. 마냥 나를 안아주고 다독여주기엔 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다.


오늘은 하늘은 맑은 데 바람이 찼다. 맑은 하늘만 보고 가볍게 옷을 입었다가 스치는 바람에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웃음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오늘은 영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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